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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 약물 도입, 이제 ‘찬반’ 넘어 제도 설계가 쟁점이다

임신중지 약물 도입, 이제 ‘찬반’ 넘어 제도 설계가 쟁점이다
정부가 9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임신중지 약물을 국가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하고 도입 초기 2년간 의료기관 내 의사 직접 처방·조제를 원칙으로 할 계획이다. · 사진 정부 e-브리핑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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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정부 발표 직후에는 ‘도입이냐 반대냐’를 둘러싼 충돌이 두드러졌지만 이후 의료계와 국회입법조사처 등의 분석이 나오면서 논점은 누가 처방할 것인지, 임신 몇 주까지 허용할 것인지, 부작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법률 공백을 그대로 둔 채 의약품 허가부터 할 수 있는지 등 구체적인 제도 설계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 “내년 1분기 도입 목표”…임신 9주 이내·초기 2년 병원 직접 조제

온라인 불법판매·알선광고 5년여간 3189건…정부 “음성적 유통 막아야”

산부인과학회 “법 개정 없이 약물부터 도입하면 의료현장에 책임 전가”

교계·생명운동단체 “태아 생명권·입법절차 먼저”…여성계는 공식 도입 환영

임신중지 약물 도입, 이제 ‘찬반’ 넘어 제도 설계가 쟁점이다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앞두고 처방과 복용, 부작용 및 사후관리 체계 마련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 사진 복음신문

국회입법조사처도 “품목허가와 법률 개정 병행해야”

정부가 임신중지 약물의 국내 도입을 공식화한 이후 논쟁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6일 정부 발표 직후에는 ‘도입이냐 반대냐’를 둘러싼 충돌이 두드러졌지만 이후 의료계와 국회입법조사처 등의 분석이 나오면서 논점은 누가 처방할 것인지, 임신 몇 주까지 허용할 것인지, 부작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법률 공백을 그대로 둔 채 의약품 허가부터 할 수 있는지 등 구체적인 제도 설계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복음신문은 지난 23일 「정부, 임신중지 약물 도입 추진 공개…교계 반발」을 통해 정부 발표와 교계 반응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임신 9주 이내 사용을 기준으로 허가심사를 진행하고 도입 초기 2년간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 이후 드러난 쟁점을 다시 살펴봤다.

정부가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불법유통 3189건

정부가 밝힌 가장 직접적인 도입 이유는 현재 존재하는 음성적 유통을 국가 의료체계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식약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6년 5월까지 온라인에서 적발된 임신중지 의약품 불법판매·알선광고는 3189건에 달했다. SNS를 통한 적발도 2021년 26건에서 지난해 313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정부는 미허가 약물을 해외 구매 등의 방법으로 구해 복용하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 건강을 위협한다고 판단한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현재 현대약품이 2024년 12월 신청한 임신중지 의약품의 수입품목 허가를 심사하고 있다. 정부 목표는 2027년 1분기 도입이다.

왜 ‘9주’인가

이번 발표에서 오해하기 쉬운 부분도 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임신중지 허용기간을 ‘9주’로 확정한 것은 아니다.

현재 심사를 받고 있는 업체가 임신 63일, 즉 9주 이내 사용을 조건으로 품목허가를 신청했기 때문에 식약처가 해당 조건을 심사하는 것이다. 정부도 다른 임신주수를 대상으로 한 자료와 별도의 품목허가 신청이 제출되면 범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약물 임신중지 관련 권고 범위와 비교하면 현재 국내 신청 범위는 더 좁다. WHO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하고 있으며, 이 약물들은 이미 상당수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해외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과 한국에서 어느 범위까지 허용할 것인가는 별개의 정책·입법 문제다.

의료계가 제기한 문제는 ‘안전’과 ‘법’

교계뿐 아니라 의료계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임신중지 관련 후속 입법 없이 약물부터 도입하면 의료현장에 책임이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회 측은 약물 도입이 불가피하다면 사전·사후 관리와 부작용 모니터링은 물론 합병증 발생 때 24시간 상담할 수 있는 안전관리체계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중지 약물 도입 자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행정지침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국회의 입법을 요구하고 있다.

약물이라고 해서 단순히 ‘먹으면 끝나는 것’으로 이해해서도 곤란하다.

약물 사용 뒤 출혈이나 불완전 배출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의료진의 확인과 필요한 경우 추가적인 의료조치가 요구된다. 정부가 초기 2년간 의사가 의료기관에서 직접 처방·조제하도록 한 것도 이런 안전관리 문제와 현행법 문제를 고려한 조치다. 매

국회입법조사처도 “허가와 입법 병행”

논쟁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후속 자료는 9월 18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미프진 허용의 쟁점과 과제-임신중지 제도화를 위한 입법 방안’이다.

입법조사처는 의약품의 안전성·유효성·품질은 식약처가 심사할 영역이지만 임신중지 허용기간과 사유, 절차처럼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는 국회가 법률로 정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분석을 내놨다.

품목허가와 관련 법률 개정을 병행해 장기간 계속된 제도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교계와 의료계, 입법조사처가 출발점은 다르지만 한 지점에서 만난다.

2019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7년 동안 후속 입법을 마무리하지 못한 국회의 책임 문제다.

교계 “약 허가보다 생명보호 기준 먼저”

정부 발표 이후 교계와 생명운동단체의 반발도 이어졌다.

7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은 정부 발표 당일 긴급성명을 내고 임신중지 약물의 품목허가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임신 9주라는 기준과 태아 생명에 관한 판단을 행정부의 의약품 허가절차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회의 법률을 통해 먼저 사회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계의 문제 제기는 의료 안전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지점에 있다.

임신중지를 여성의 의료적 선택으로만 볼 것인지, 태아의 생명 보호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명윤리적 판단이다.

반면 여성계와 재생산권 단체들은 장기간의 제도 공백 때문에 오히려 여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물과 고비용의 비급여 의료에 노출돼 왔다며 공식적인 의료체계 안에서 약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향신문

양쪽에서 동시에 제기되는 비판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정부안이 서로 반대되는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비판받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운동단체는 “입법도 하지 않고 도입을 서두른다”고 비판한다.

반대로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병원 안에서 의사만 조제하도록 하면 접근성이 지나치게 제한된다”고 지적한다.

의료계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도입 여부보다 먼저 의료진이 어떤 기준으로 진료해야 하는지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약 하나를 허가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세 입장이 오히려 맞닿는다.

이제 국회가 답해야 할 문제

정부 발표 이후 약 2주 동안 나온 자료를 종합하면 향후 쟁점은 크게 다섯 가지로 좁혀진다.

임신중지가 가능한 법적 범위를 어디까지 정할 것인가,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어떤 보호절차를 둘 것인가, 의사와 의료기관의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응급상황과 사후관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태아 생명 보호와 여성의 건강·자기결정권을 법률 안에서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다.

특히 미성년자의 보호자 동의 여부는 정부도 아직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임신중지 약물 논쟁을 단순히 ‘생명 대 여성’의 대립구도로만 보는 것은 현재 벌어지는 논의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정부에는 안전한 의료체계를 설계할 책임이 있고, 의료계에는 의학적 기준을 제시할 역할이 있다. 교계와 시민사회는 각각 생명윤리와 기본권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2019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계속된 법적 공백을 메워야 할 책임은 결국 국회에 남아 있다.

2027년 1분기로 제시된 약물 도입 시점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한국사회가 임신중지에 관한 법적·의료적·윤리적 기준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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