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속의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고, 어미 닭이 밖에서 동시에 껍질을 쪼아 부화를 돕는다는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어떤 일도 혼자 발버둥 쳐서 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타이밍과 협력이 맞아야 생명이 태어나듯, 우리 인생도 혼자가 아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도움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합니다. 그것을 가장 깊게 경험한 것이 바로 다윗왕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왕은 목동의 자리에서 출발해 위대한 가문을 이룰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믿고 고백했던 다윗은 위대한 가문을 이루고, 위대한 신앙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추석 명절을 맞아 우리의 가문이 하나님 안에서 위대한 가문, 점점 잘되는 가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다윗과 같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신다”를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그러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을지 사무엘하 5장 10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고, 다윗의 집은 점점 강하여 갔다(삼하 3:1)” 왜 그럴까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신앙의 중심이 ‘나’인가, ‘하나님’인간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신앙은 철저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 감동’에 취한 신앙이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자신이 해야 할 일, 즉,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는 순종’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내 기분과 상황에 맞추어 타협하는 신앙(사울)은 무너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내 삶을 꺾어 복종하는 다윗과 같은 믿음의 신앙을 가진 자를 하나님은 점점 강성하게 하십니다.
두 번째, 우리는 질그릇임을 인정하고 ‘보배’를 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대단한 능력이 없는 연약한 ‘질그릇’입니다(고후 4:7). 질그릇은 부딪히면 깨지고, 다가오는 질병이나 세상의 유혹을 스스로 막아낼 힘이 없습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니 위대한 가문의,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잘것없어 보이는 질그릇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담아야 합니다. 그렇게될 때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고, 망하지 않는 위대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실 때 우리 가문은 하나님의 힘으로 이기게 됩니다.
세 번째, 이 믿음의 비밀을 자손에게 유언처럼 물려주어야 합니다.
다윗은 죽음을 앞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권력이나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지켜 행하라(왕상 2:1-4)”고 유언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가 자녀의 학업과 세상 성공을 위해서는 온갖 잔소리를 하면서도, 정작 생명이 달린 ‘신앙 전수’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합니다. 자녀가 듣기 싫어해도,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잘 믿어야 우리 가문이 산다”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자녀들을 영원히 망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유일한 길입니다.
세상의 명예와 재물을 물려준 가문은 결국 당대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질병 하나, 유혹 하나 막아낼 수 없는 연약한 질그릇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질그릇이 깨지지 않고 영원히 빛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속에 천하보다 귀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는 것뿐입니다.
이제 ‘나 중심’의 감정적이고 얄팍한 신앙과 같은 사울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참된 순종의 모습인 다윗과 같은 신앙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이 생명의 복음을 자녀들의 가슴에 끊임없이 심어주어야 합니다.
즉별히 추석 명절을 맞아 가장 복된 소식인 구원의 복음 소식이 온 가정에 넘쳐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대를 이어갈수록 점점 강성하여지는, 하나님이 친히 책임지시는 명문 가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