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반도 정세가 바뀐다 …
사람의 꾀가 아닌 주의 견고한 성에서 응답의 인자하심 보아야 (시 31:20~22)
2017년 말, 북한이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하고 위협을 느낀 미국에서 선제타격론이 비등하면서 한반도의 북핵 위협은 극에 달했다.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였다. 김 위원장은 “북남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하여야” 한다며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남북 당국의 대화를 제안했다. 멈출 줄 모르던 북한의 핵질주로 위기가 고조됐던 한반도 정세가 북한의 신년사를 필두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그의 제안대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가 실제로 성사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국면이 전환되었다. 백척간두의 한반도 위기상황에 해빙무드가 깃들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연달아 3차례나 열리고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세계의 주적에서 갑자기 평화의 전령사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목받는 지도자로 부상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주창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가 세계무대의 중심에 올려졌다. 지난해 우리는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시대가 도래한다는 기대감에 들뜬 한 해를 보냈다.
그리고 아직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채 새해를 맞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일 신년사를 통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육성발표하고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핵무기의 생산, 시험, 사용, 전파를 하지 않겠다는 ‘4불’ 언급이다. 이와 함께 남북관계에 발전의지를 재확인하며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다자협상”을 언급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의지도 강조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초에 김정은이 보낸 친서를 공개하며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근 중국 방문과 관련해 “북미 정상회담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조”라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양측의 입장차에 대한 접점들이 상당히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아직까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대화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는 우려의 실마리도 함께 보았다. 최초로 성사된 북미정상회담의 6·12 합의는 기대에 못 미쳤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채 제재 해제만을 이루려 하고, 미국은 완전한 핵폐기 전까지는 제재·압박을 계속하려고 하기 때문에 양쪽의 입장이 동시에 반영되다 보니 애매모호한 합의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쪽의 이같은 상반된 입장은 더 또렸해 졌다. 북한의 비핵화가 먼저라는 미국과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가 먼저라는 북한이 팽팽히 맞서면서 북미 간 협상이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에 나선 이후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이 없어진 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제 급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한반도 평화의 운전자임을 자청한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 프로세스에 매달려 지나치게 앞서 나갔다. 북한 비핵화보다 남북관계가 앞서가면서 한·미 간 입장 차이가 생겼다. 한국 문제에 큰 비중을 두지 않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까지 ‘70년의 한·미동맹이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한·미 간 북핵 관련 입장 차이가 생기면서 동북아에서 미국이 일본에 북핵이나 한반도 문제 관련해 의존하는 정도가 심화되고 있다. 이는 앞으로 더 큰 불행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한·미동맹 강화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이 독자적인 대북 경제 원조를 추구하는 모습은 대북제재를 유엔 합의로 정하고 국제질서로 지속하고 있는 국제사회와의 갈등도 피할 수 없게 했다. 문 대통령은 10월 유럽 순방외교에서 대북 제재의 완화 필요성을 공론화했지만 유럽 정상들로부터 일제히 보이콧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당시 아셈(ASEM) 의장 성명은 북한 핵·미사일 및 관련 시설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를 재차 강조했다.
이렇게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2019년도를 맞았다. 과연 2019년도에 한반도 비핵화는 괄목할 진전을 이룰 수 있을까. 한반도 평화는 실질적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까. 결론부터 말하면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새해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더욱 만만치 않다.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우리가 국제사회와 함께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하지 않는다면 현재대로는 한반도의 미래가 밝지 않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현실을 알고 결코 실망해선 안 되는 이유는 정확한 현실 판단이 위기를 극복하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이 어떤지, 무엇을 어떻게 알고 대처해야 할까.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이 한반도 핵위기의 당사자인 북한의 속셈이다. 과연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의 의지가 있을까.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핵무기 4불 원칙을 천명했다. 핵무력 증강 포기 선언이므로 표면적으로는 진전된 의지로 보이지만 핵 신고와 검증 등 결정적인 비핵화 조치는 언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적인 핵만 언급한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핵보유국’들의 논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북한은 이미 만든 핵무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일절 언급이 없다. 북한은 훨씬 오래 전부터 인도·파키스탄식으로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전략을 준비해 왔다. 핵 문제에 관한 한 북한은 기존 입장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요구는 핵동결이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이다. 북한은 지난해 9월 김 위원장이 직접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도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당시 이미 영변 핵시설은 너무 노후화돼서 며칠 간격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북한이 이를 폐기하지 않은 것은 핵협상 레버리지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 전체 시설 중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보다 훨씬 많은 핵시설과 핵물질, 핵무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해 현재 북한은 신고도 폐기도 거부하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지금까지 단행한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에 대해 미국이 재제완화 수준의 ‘상응조치’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판’을 깰 수도 있다는 사실상의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며 비핵화를 포기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그러면서 특히 미국이 ‘고질적 주장’에서 대범하게 벗어나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원칙에서 ‘공정한 제안’을 내놓고 올바른 협상자세와 문제해결 의지를 갖고 임한다면 원하는 ’종착점‘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또 “북과 남이 평화ㆍ번영의 길로 나아가기로 확약한 이상 조선반도 정세 긴장의 근원으로 되고 있는 외세와의 합동 군사연습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 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 위원장은 연합훈련이 연례적이고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라는 점을 이해했다”고 한 것과 배치된다. 결국 한반도 안보불안의 원인은 북한의 핵이 아닌 한·미 연합군사훈련이라는 북한의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미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반입에 대한 한국의 선택을 압박한 것이다. 북한이 자신들은 거의 핵무장을 완료한 상황에서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남한에 대해 ‘외세’ 운운하며 무장 약화를 시도하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고 한·미의 틈을 벌리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또 “개성에 진출했던 남측 기업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고 싶어 하는 남녘 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조건 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용의’를 밝혔다. 이 또한 얼핏 보면 북한이 남한에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에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신경 쓰지 말고 독자적으로 적극적으로 경협에 나서라는 주문인 셈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가 완전히 폐기돼야 한다. 이를 잘 아는 북한으로서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정서에 호소하므로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유엔을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는 국제적인 제재국면의 이완을 노리는 포석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가 “올해 김 위원장의 대미·대남 전략은 한마디로 미국과 핵협상을 핵군축협상으로 좁혀 핵보유국으로서의 전략적 지위를 굳히고 대북제재를 해제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한 점은 우리가 깊이 유의할 대목이다.
우리가 유의할 것은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처럼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북한에 끌려가는 것은 또 과거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공동성명 등이 모두 단계적 해결을 지향하는 합의였다. 과거와 달리 북한은 현재 최소한 수십개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단계적 접근은 북한의 핵보유를 장기간에 걸쳐 기정사실화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후속조치 보장을 의심한다면 일괄 타결안을 거론 못할 이유가 없다.
북한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신고·폐기하고, 미국의 반대급부도 동시에 제공되는 일괄 타결안이 해법이다.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가장 초보적 단계의 핵 신고부터 해야 한다. 그런 변화가 없다면 북한은 단지 제재 해제와 남한으로부터의 경제 지원을 위해 변화를 ‘연출’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직 우리는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개념부터 명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명확해야 북핵 폐기를 이끌어낼 남북미 간 신뢰의 첫걸음이 될 수 있지 지금처럼 두루뭉실이 되면 앞으로도 양쪽의 동상이몽이 계속돼 핵협상이 진전될 수 없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이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며 현재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도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그릇된 인식 탓”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 것과 외부로부터 전략자산과 전쟁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되어야 한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다. 현재 한·미 간 군사훈련이 유예된 상황에서도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도 북한은 자신들의 대외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조선의 오늘’ ‘메아리’ 등을 총동원해 김정은 신년사 내용을 반복해 주장하고 있다. 남북 분단 70년 동안 남한에서 집권한 정권마다 북한 문제를 풀고 싶어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북한의 행태를 남쪽 정권이 바라는 대로 해석한 데 원인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