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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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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 희망이 없는 이유

GOSPE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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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분열과 양극화 확대 책임 정치권에 …

하나님 가르치신 평등사상과 모든 인간의 존엄은 민주정치의 핵심 (골 3:11)

대중의 독재란, 대중을 이용하는 정치이다. 개개인의 성찰을 마비시키는 팬덤 정치는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로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갖고 있다. 대중의 독재는 권력을 쥔 세력이 나라를 순식간에 절단낼 위험성을 갖고 있다. 나라를 뒤흔든 광우병이나 천안함 폭침과 관련된 가짜뉴스는 나라의 지축을 흔들고 권력 투쟁과 정략에 이용됐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을 때조차 ‘아님 말고’ 식으로 넘어가 버린다.

오늘날의 정치 세력은 막강한 기득권적 힘이 갖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대중을 이용하는 ‘대중의 독재’라는 보다 강력한 정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기실은 권력 투쟁의 수단으로 대중을 이용하는 기법의 위험한 진화일 뿐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대로 ‘투표용지는 총알보다 강력한’ 힘으로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정치세력이 정략과 권력을 위해 활용하는 시대인 것이다.

기득권 정치 세력의 패싸움으로 전락한 한국 정치가 양 극단에 몰려 협력의 길을 모색하지 않는 정치판을 만들고 자기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대중의 독재로 정당성을 부여받고 막강한 힘까지 가지다 보니 나라가 싸움장이 된 채 수많은 국가 미래 과제를 놔두고 산으로 가고 있다. 기득권 보호와 확대를 위해서라면 재계는 물론 모든 기득권 세력과 손잡는 정치결사체를 만들고 있다. 이번 22대 총선에서 국민의 힘과 민주당이 받은 표, 즉 득표율은 각각 44.39% 대 51.01%였다. 양당의 득표율 격차는 6.62%포인트에 불과했지만 민주당이 63.38%의 국회 의석을 차지한 것은 한 표라도 더 받은 자가 모두를 갖는 소선구제 때문이다.

결국 권력 유무를 가를 이기기 위한 1표에 사활을 걸다 보니 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고 사회·경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혐오·매표·이미지 정치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모두 다 국민만 본다고 표방하지만 거대 여야가 정치적 기득권을 양분하고 극한 싸움을 벌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권력 게임에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나. 이런 구조에서 한국 정치가 바뀌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조선 중기 이후 200년 내내 당쟁으로 지고 샌 것과 같다. 당쟁도 민생 개혁과는 무관한 싸움이었다. 권력 장악에만 관심이 있다 보니 서양식의 기술 발전은커녕 도로 하나, 다리 하나 놓은 게 없다. 그저 허황된 명분론과 공리공담에 기대 헐뜯기식 싸움만 했다. 실사구시와는 거리가 먼 싸움이었다.

그러는 사이 조선은 안으로부터 썩어들어갔다. 민생은 지칠 대로 지치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다. 결국 조선이 망하고야 말았다.

지금도 위기이다. 당파 이익이 아닌 국가 이익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도 못다 할 상황이다. 저출산, 양극화, 고령화, 노인빈곤, 자영업 몰락, 기후위기, 제조업 위기, RE100 이행, 지방 소멸, 개혁과제, 북핵위기, 저성장, 세계분쟁, 국가우선주의 등등 앞으로 살기가 더 힘든 끝도 없는 대내외의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 정치인들이 겨우 생각한다는 게 환심을 사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나 지역발전 이슈로만 붙들고 늘어져선 안 될 상황이다.

대의정치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대통령 제도를 처음 선보인 미국에서조차 재임 중 행적이 낙제점을 받고 낙선한 것도 모자라 갖가지 위법행위로 기소된 트럼프가 다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두에 선 기현상이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시사한다.

대중과 영합한 이기주의와 국가 우선주의가 극에 달한 지금 예전처럼 인류 번영과 평화를 이끌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리더가 사라진 틈을 타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중동 전쟁의 위기가 끝도 없이 번져가고 있다. 이제 유엔안보리는 지구촌 핵확산 방지의 역할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이 부결됐다. 동북아의 위기를 고조시키는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의 기회를 열어 준 것이다. 이처럼 지구상에 다자 간의 협력 메커니즘이 퇴조하면서 냉전 구도가 부활하여 전통적 서방 진영과 러시아·중국 중심의 전체주의 세력 간의 패권 경쟁은 언제 열전으로 발전할지 모르는 위급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가 분열되고 한국 사회가 분열된 지금 국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져 간다. 국가적으로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는 지금, 핵으로 무장하고 기회를 노리는 북한과 대립한 채 미래를 실사구시로 준비한 것이 없는 이대로라면 한국이 순식간에 패망의 길로 들어서도 할 말이 없다. 대한민국이 다시 탄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첫째, 가장 먼저 분열과 양극화 구조를 확대한 책임이 있는 기득권 정치결사체로 전락한 정치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소득 격차가 큰 나라다. 양극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인 소득 5분위율을 보면 소득상위 20%의 소득이 소득 하위 20%의 소득의 10배를 넘는다.

불평등의 확산속도도 가장 빠르다. 불균형성장 전략이 초래한 대·중·소 기업 간의 임금 격차와 계층 간 양극화는 우리 사회에 갈등을 심화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사회적 불만의 분출로 혐오 범죄와 묻지마 폭행이 기승을 부리고 일찍부터 좌절한 청년과 청소년들이 범죄와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 젊은 세대들의 자살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것이 누구의 책임일까.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저서 ‘불평등의 대가’에서 불평등은 시장이 아니라 정치 시스템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말한다. 그는 정치 시스템의 실패로 인한 “불평등은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을 낳고, 이 불안정은 다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악순환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고 1:99사회의 원인을 진단한다. 경제 게임의 규칙이 정치에 의해서 결정되고, 경기장은 상위 1퍼센트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왜 그럴까? 그 해답은 정치 게임의 규칙 역시 상위 1퍼센트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의 예를 보면 공부잘한다고 일류대학 가는 게 아니다. 일류대학 입학생의 통계로 증명되는 것은 학생의 실력보다 학생의 부모와 사회적 지위 등 가족 계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졸업 후 사회적 성공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같은 기득권 이권 집단이 세력화돼 전 사회 시스템에 자리 잡고 정치 시스템화된 것이 미국이다. 상류층은 항상 상류층인 사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장이 권력을 이용해 서민들의 대대로 살아온 땅을 헐값에 수용해 특정 집단에 수천억 원의 이익을 남겨주는 행위나 자신의 특권을 이용해 자식 입학을 위해 일명 아빠 찬스라는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민은 아무리 노력하고 자기의 전 시간을 다 써서 일해도 살기가 힘든 사회가 확대되고 있다.

스티글리츠의 말대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정치 시스템은 잘못된 시장을 바로잡지 못했다. 고삐 풀린 시장은 인류를 욕망의 노예로 만들었고, 그 위에 지어진 경제 시스템은 더 큰 욕망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도록 설계됐다. 이 시스템 안에서 제도권 정치는 이를 바로잡을 능력을 상실한 단계에 온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이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사법 체계에도 악영향을 끼쳤다고 상세한 증거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