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유훈 평화헌법 개정 힘 얻어 …
하나님이 일본에 요구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진정성 있는 회개 (말 4:6, 눅 13:3)
지난 8일 아베 신조(67) 전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도중 피격돼 숨졌다.
일본 우익의 상징적인 정치인의 피살 소식에 일본 열도는 충격에 빠졌다. 용의자 야마가미(41)는 자신의 어머니가 통일교에 심취해 거액의 기부를 하는 등 가정 생활이 파탄난 것을 원망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는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 행사에 영상을 보낸 것을 보고 통일교와 아베 전 총리가 유대가 깊다고 생각하고 1년 전부터 암살을 결심하고 범행을 준비해왔다.
그렇다면 아베 전 총리가 왜 통일교 영상에 등장한 것일까. 아베의 통일교와의 인연은 그의 외조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은 1970년 4월 일본의 통일교회를 방문한다. 통일교의 문선명(1920~2012) 교주가 1968년 4월 일본국제승공연합을 창설한지 얼마 안됐을 때이다. 이후 기시 전 수상은 1970년대 자민당의 스파이방지법 제정 등 반공입법 과정에서 재정 후원과 여론 형성을 위해 통일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통일교는 정치세력화를 위해 기시 전 수상의 정치 활동에 돈과 운동원을 동원해 주었다.
저서를 통해 통일교의 실체를 폭로한 야마구치 변호사(통일교피해대책변호사연합회 회장)는 2017년 CBS와 인터뷰에서 “기시 노부스케는 보수정권 하에서 통일교 승공연합의 힘을 이용해 대북정책이라든지 반공운동을 벌여왔고, 일본 정치가에는 젊은 선거운동원이나 당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통일교가 조직적으로 돈과 운동원을 보내주었다”고 주장했다.
아베 전 총리를 암살한 용의자도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해외에서 당시 교주를 초대하는 등 일본에 신앙을 퍼트렸다고 생각해 그 손자인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아베 전 총리는 늘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를 꼽았다. 기시 노부스케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상공대신 등을 지냈고 종전 후 A급 전범으로 체포돼 복역까지 했던 인물이다. 이후 1957년 일본 총리가 됐다. 아베 전 총리는 유년 시절 남부 야마구치현 지역구 관리로 바빴던 부친 대신 자신을 돌봐준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기시 전 총리의 정치적 유산이 아베 전 총리인 셈이다. 아베 전 총리도 “나는 아베의 아들이지만 기시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고 했을 정도다.
기시 노부스케의 군국주의를 그대로 이어받은 아베 전 총리는 개헌을 통한 군사력 증강을 추진해온 우익 강경세력의 상징적 존재다. 아베 전 총리는 두 차례에 걸쳐 총 8년 9개월 총리로 재임한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로, 집권 기간 총리 보좌 기관인 총리관저를 통해 인사권을 틀어쥐고 관료들에 대한 압도적인 장악력을 발휘했다.
경제 측면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을 회복하겠다면서 ‘아베노믹스’를 앞세웠고, 지금도 일본은 아베 전 총리의 신념대로 ‘엔저’(엔화 가치 절하)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아베 전 총리의 집권 기간 한국, 중국과 대립했고,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심각해졌다. 아베가 제2차 집권을 시작한 이듬해인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아베는 박근혜 정권과 2015년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으나 이후 한국에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피해자 중심이 되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하면서 합의는 표류했고 이후 첨예한 한일갈등의 원인자로 작용했다.
아베는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발언해 한국을 자극하기도 했다. 또 강제 동원 조선인 피해자에 대한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을 명령한 한국 대법원판결에 강하게 반발해 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했다.
아베 전 총리는 2020년 9월 퇴임 후에도 집권 자민당 내 최고 파벌인 아베파의 수장으로 ‘상왕’ 노릇을 해왔다. 자신의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지금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드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이베는 퇴임 후에도 필생의 과업으로 매달려 온 개헌을 앞장서 추진해 왔다. 군대 보유 금지, 교전권 불인정 등을 명시한 ‘평화헌법’ 개정과 반격 능력 보유 등의 방위력 증강도 추진했다. 아베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흐름을 주도해 온 당사자였다.
아베 집권 이후 한·일 관계는 가장 불편한 시기로 접어들었고, 역사 왜곡 등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더욱 심해졌다. 아베는 불의의 피습으로 사망했으나 그의 영향력은 참의원 선거에 반영됐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이틀 뒤인 10일 치른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대승했다. 자민당을 비롯해 개헌을 지지하는 4개 정당의 전체 의석수가 177석으로 늘어,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166석)을 훨씬 넘어섰다. 선거 결과에 고무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되도록 빨리 개헌안을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생전의 아베 전 총리가 “개헌을 못 해 단장의 심정”이라던 평화헌법 개정이 힘을 얻게 됐다. 아베 전 총리는 타계했지만, 아베의 그림자는 여전한 셈이다. 개헌이 이뤄지면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에 가까워지게 된다.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인 100조 원대로 증액하고, 전수방위 원칙을 흔드는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공식화하는 것도 아베 전 총리가 밀어온 공약이었다.
아베가 밀어주어 총리에 당선된 아베의 후계자인 현 일본 총리의 개헌 의지 언급은 심히 우려스럽다. 아베의 총리 재임 중에 개헌 지지 세력이 의회의 3분의 2를 넘긴 적이 있었지만, 당시는 국민 여론 등에 가로막혀 개헌안을 발의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번 피습 사망으로 아베에 대한 추모 움직임이 개헌에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재임 이후 일본사회의 우경화 영향은 개헌 여론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교도통신이 올해 3∼4월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우편 여론조사에서 개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은 68% 수준으로 필요가 없다는 응답(30%)의 두 배를 웃돌았다. 아베 재임 기간 동안 한일관계도 악화됐고 일본사회의 혐한도 증가한데다 이번 암살 용의자가 통일교 교주를 노렸다가 아베로 범행 대상을 바꾼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내 혐한 감정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일본 후쿠오카의 한국총영사관은 이번 사태로 일본 내 혐한 감정이 높아질 수 있다는 내용을 올렸다가 확산 우려로 삭제하는 헤프닝을 빗기도 했다. 여행 업계에선 일본 단체관광이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재개됨에도 이번 피살 여파로 일본 자유여행 재개가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아베 재임 이후의 한일관계 악화와 일본의 우경화, 그 연장선 상의 평화헌법 개헌 추진은 한국에 우려를 더한다. 전후 75년간 유지되어온 평화주의의 상징인 일본 헌법 9조의 개정 여부를 포함한 개헌 문제는 한일관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정세를 요동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전범국가의 재무장이라는 점에서 침략 피해자인 한국으로서는 우려가 앞설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일본은 지금까지도 과거사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국가다. 독도 영유권 주장도 강화하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