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비핵화 물꼬 트는 마지막 기회 …
한국, 막힌 담 허신 예수님처럼 세계사에 가장 중요한 중재자 역할 주어져 (엡 2:14)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났다. 지난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네 번째 방북이 전격적으로 취소되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이뤄진 정상회담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는 현재 놓여 진 한반도 상황을 내포한 사건이었다. 무역전쟁이라는 극단의 수단을 통해 패권경쟁을 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북한 비핵화에 대한 높아가는 불신, 대북 정책의 속도 차이에서 노견되는 한미관계의 균열 위험 등이 모두 반영돼 격동하는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모든 길은 비핵화로 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 정세의 위험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원하는 ‘남북관계 발전’이나 ‘군사적 긴장완화’도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아무리 자주적 남북관계를 강조하고 민족 통일의 길을 우리 스스로 해쳐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다고 해도 대북 제재가 엄존하는 한 혼자 앞서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많은 경협방안들이 합의됐지만, 이 또한 비핵화 없이는 한 걸음도 진전될 수 없다.
올해는 정말 숨 가빴다. 지난 4월과 5월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잇달아 만나고, 이어 6월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역사적 첫 만남을 가졌을 때의 흥분은 지금도 가시질 않는다. 그러나 이후 지난 몇 개월 전개된 한반도 정세는 기대 이하였다. 기대를 저버린 주역이 북한이냐, 미국이냐, 중국이냐며 서로 탓을 하기 이전에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는 ‘비핵화’ 하나로 귀착된다. 비핵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이뤄져야 모든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만큼 비핵화가 오늘날 한반도 정세를 뒤덮고 있는 가장 큰 이슈이고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할 키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의심해 왔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비핵화가 없다면 ‘역대급’이라는 현 수준의 제재를 한 층 더 강화하겠다며 한 목소리를 내왔다. 한국 정부의 특사단이 북한을 방문한 지난 5일 미국 의회는 정 반대의 반응을 나타냈다.
카딘 미 민주당 상원의원은 “현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를 할 의도가 없어 보인다.”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하고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기회를 보고 있지만 미국이 대북협상에 나서는 이유는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리 가드너 공화당 상원의원은 “북한과의 대화 진행 상황과는 별개로 최대한의 압박을 유지해야 하고 압박수위를 늦춘다면 이는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상원에는 북한의 에너지 공급과 금융거래를 제재하는 두 건의 법안이 계류 중에 있는데, 미 의회는 북한이 구체적이고 점진적인 비핵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11월 중간선거 이후 관련 법안의 통과를 시도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미 행정부와 의회의 강경한 태도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자료가 잇달아 공개된 것이 뒷받침한다. 지난 7월 30일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한이 평양 인근에서 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제조 중인 정황을 미 정보 당국이 포착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유엔도 지난달 초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패널 연례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 사례로 89건을 제시하며 북한이 올해 1월부터 5개월 동안 연간 50만~140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구입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또 전문가패널 보고서는 “북한이 핵무기,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영변 핵 단지를 거론하면서 “여전히 활동이 이뤄지고 있고, 5MW(메가와트) 원자로도 계속 가동 중”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 “새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는 북한의 불법 무기 판매와 위장된 연료 선적, 불법 금융거래의 최신 증거가 담겼으며 국제 경제 제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며 북한이 시리아와 예멘, 리비아 등 분쟁 지역에 무기를 팔아오다 적발됐다고 전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느슨한 제재와 북한의 무기판매, 특히 한국의 경협 움직임까지 대북제재의 효과를 떨어뜨릴 상황에 미국이 경각심을 느꼈다. 미국 유엔대표부는 북한의 국제사회 제재망 회피와 러시아·중국 등 일부 국가의 대북제재 이행 약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3차 남북정상회담 하루 전인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특히 미국은 대북관계 개선에 열중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다. 미국의 소리방송(VOA)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과거 대북 협상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미국의 전직 외교당국자들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관계에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며, 남북 간의 진전이 한미관계의 균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미국의 소리 방송이 미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매체라는 점에서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부분이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유감스럽게도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한반도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어 하는 인상을 줬다”면서 “한국은 그러한 인상을 바꿔야 할 시기가 왔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이 그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핵 특사는 “한국은 제재에서 후퇴해, 북한과의 관여를 늘리려고 하지만, 남북한이 이룬 진전은 미-한 관계에 균열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과의 동맹 유지에 필요한 요건을 준수하는 데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는 “유엔 제재를 위반하면서까지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실책이 될 것”이라면서 “남북정상회담 자리에서 북한 비핵화를 분명하게 정의를 하고, 국제적인 검증을 수용하도록 압박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 국무부도 “남북관계에 너무 치중하지 말고, 북한의 비핵화와 속도를 맞춰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미 재무부는 남북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의 문을 연 14일 미국이 북한 IT 인력 국외 송출과 관련해 대북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연락사무소 개소식 당일에 미국이 대북 제재 조치를 발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며칠 후면 (공동연락사무소로)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하는 시대가 열린다.”고 공언한 바로 그날에도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연락사무소 개소를 서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미국은 비핵화가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남북 관계에만 가속 페달을 밟는 우리 정부에 지속적인 우려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같은 옥죄는 상황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는 삼성과 SK, LG 등 대기업 총수들이 대거 방북단에 동행했다. 한국이 비핵화 진전보다는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과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를 올리려는 게 아닌지를 미국이 오해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남·북·미 간의 군사적 긴장과 적대관계 해소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려고 한다.”며 “그래야만 남북 경제 협력과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추진이 본격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우려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하루 전 대북제재 이행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나섰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가 희석되고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미 국무부는 대기업 총수들이 동행한 것에 대해서도 ‘분야별 상품을 비롯한 유엔 제재의 완전한 이행’을 거론하면서 비핵화보다 남북 경협이 앞서갈 수 없다는 ‘경고 신호’를 보냈다. 미국의 이 같은 경고에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남북 경협에 나설 경우 FFVD(완벽한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조치)라는 대북 정책 목표 자체가 어그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 등을 들어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대북 지원에 나선 상태에서 한국마저 남북 경협을 추진하면 대북 제재망 자체가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북한은 미국을 의심해왔다. 미국은 지난 5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파기 선언 이후, 2015년부터 2년 간 주요 6개국의 다자간 협상으로 완성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지난 8월 7일 대이란 제재를 재개했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달 8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나 “미국은 지금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의무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믿을 수 없고 신뢰가 낮은 나라로 인식된다.”며 “미 행정부가 최근 수년간 보인 언행 탓이다.”라고 성토한 바 있다.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북핵 협상의 성공 여부에 대한 전망 기사를 다루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태도에 대해 “상대가 양보할 이유를 찾기 어렵게 만들고 미국의 약속은 공허하다는 메시지를 발신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입장에서 그런 미국을 믿고 핵을 전부 폐기한 이후 자위 능력이 없는 볼모로 떨어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비핵화 일정을 최대한 늦추려고 한다. 내부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고 겉으로는 핵을 포기하는 척만 할 수도 있다. 즉 ‘핵폐기’가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하듯 앞으로 만들 핵과 미사일(ICBM)은 포기하되 기존에 만들어 둔 핵은 숨기거나 시간이 흘러 묵인 받는 ‘핵동결’을 목표하고 있을 수 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이란을 방문 중이던 9일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핵 지식을 보존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 같은 북한의 속내와 미국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북한 최고위층이 ‘핵 지식의 보존’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는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서 ‘불가역적’의 의미를 담고 있는 ‘I’를 빼고 ‘CVD’까지만 동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경우 언제든 다시 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핵 능력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지금 북한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국제사회의 제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