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성장은 부흥의 3요소 회개기도, 성령체험, 복음전도 이뤄진 부흥운동 때문”
영성학술세미나 제2편 - 나운몽 목사가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 : 나서영 박사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는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당연시되는 명제지만 오늘날 한국교회 교인들이 교리나 교파와 상관없이 하나같이 이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된 데는 나운몽 목사의 공로가 컸다.
1. 칼빈주의의 탄생과 전개: 원래 장로교 칼빈주의의 골자인 이중예정론은 구원받을 사람, 멸망시킬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칼빈주의는 어거스틴에서 시작됐다. 바울 사도에서 루터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역사에서 어거스틴을 필적할 사람은 없었다. 당시 영국수도사 헬라디우스는 “노력하고 선을 행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며 인간의 의지를 강조했다. 죄 안 지으려면 안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에 대해 “그는 사람의 의지를 너무 낙관적으로 본다”며 “타락 이후 죄의 권세가 압도해서 사람은 자기 의지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봤다. “내가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한다”고 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어거스틴은 인간이 타락 이후 죄의 종이 돼 죄를 지을 수는 있어도 죄를 안 지을 자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문제는 그렇다면 예수는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선인데, 타락 이후 선을 행할 자유가 없는 인간의 의지로 선을 행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어거스틴은 그것을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은혜를 주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결국 인간의 의지로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창세전부터 예정된 사람에게 은혜를 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 은혜는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은혜를 줬는데 안 믿겠다고 할 수도 없다.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돼 있는 사람은 타락할 수도 없다. 이것이 곧 ‘끝까지 구원하신다’는 견인 이론이다. 이후 칼빈이 이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사람은 같은 운명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예정론을 집대성했다. 그 후계자 베사는 제네바 신학교를 통해 이중예정론 교육을 본격화했다. 이들을 개혁파, 이들의 신학을 개혁신학으로 일컫는다.
가장 전성한 곳이 네덜란드였는데 대표적 인물이 알미니우스였다. 모두 이중예정을 믿고 있을 당시 유일하게 케빈 코르트가 칼빈주의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알미니우스는 이에 반박하기 위해 그의 책을 유심히 보다 케빈 코르트의 말이 맞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양심대로 개방적 예정론을 새로 내놨다. “하나님이 예정하시긴 했는데, 누가 예수를 믿을지 예지하셨다”는 것이었다. 예지예정론의 시작이었다. 이후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고마루스와 싸움이 시작됐다. 이 둘은 죽을 때까지 창세전 예정이 맞는지를 놓고 싸웠다. 싸움은 그 제자들에게 이어져 계속됐다. “택한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고마루스파의 ‘제한예정론’과 “예정은 예정이지만 예수믿는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는 알미니우스파의 ‘개방예정론’ 간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은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됐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원하고 있었다. 정치권에선 교역자 교인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칼빈주의자의 지지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고마루스 편이 되었다. 반면 스페인과 무역을 계속해야 하는 일부 상인계층만 알미니우스를 지지했다. 결국 1619년 도르트회의에서 유명한 Tulip 결정을 통해 알미니우스파를 정죄했다. Tulip 즉, 완전한 타락, 완전한 선택, 저항할 수 없는 은혜, 택한자는 끝까지 구원이라는 대 명제가 확립된 것이다. 이후 알미니우스파는 이단으로 전락해 교회로부터 추방되고, 벌금형을 받거나 지도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장로교에서 이단이 된 알미우스사상이 감리교로 갔고, 하나님의 성회, 나사렛, 침례교로 번져갔다.
2. 북미의 칼빈주의와 부흥운동의 시작: 미국은 이민자로 이뤄진 시민사회를 일찍 성립시켜 보다 자유로운 신앙운동이 가능한 토대가 마련됐다. 18세기 초기 이민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학자는 조나단 에드워즈였다. 그 역시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다. 24세에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후에 프린스턴대 총장을 지낸 탁월한 인물이다. 그의 설교는 논리적이면서도 쉽고 감동적이었는데, 설교 도중 갑자기 우는 사람, 넘어지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기도가 터지고, 회개의 역사가 나타났다. 1차대각성운동의 시작이었다. 여기에 영국의 휫필드가 미국을 전도여행하며 지역적 각성운동이 최초로 연합하는 계기가 됐다. 전도 여행을 통한 대각성운동의 확산은 이미 예정받았으므로 전도할 필요가 없던 칼빈주의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후 맥그리디, 에드워즈의 손자 드와이트까지 가세한 입신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며 2차 각성운동이 전개됐다. 미국의 각성운동은 칼빈주의가 알미니안주의 쪽으로 수정되는 계기가 되었고 감리교, 침례교 등을 비롯 미국교회의 성장기를 가져다 주었다. 미국의 부흥운동을 보면 3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기도, 성령체험, 복음설교이다. 이후 미국의 대표적 복음전도자 무디, ‘근대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윌리엄 케리 등에 의해 19세기를 선교의 세기로 맞이하게 됐다. 부흥운동의 결과 오늘날은 전 세계가 선교사 일색인 시대를 이뤄놓고 있다.
전통적으로 장로교는 구원이 이중예정에 의해 이뤄지므로 전도나 선교와 거리가 멀었다.
전도란 전제가 누구든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택한 사람을 구원한다는 전제하에선 선교할 필요가 없다. 미국에 선교 역사가 일어나면서 윌리엄, 에드워즈 등을 신파라고 부른 이유다. 그러나 부흥운동과 성령역사를 거치면서 미국 장로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르트회의가 있은지 30년 후 보다 정밀화해 영국 웨스트민스터의 신앙고백으로 채택되었고 이는 장로교의 신앙고백이 됨)을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1903년 미국 장로교는 “구원받는 자에 대한 영원한 결정과 교리는 이것과 결부되어 주장되어야 한다. 전세계를 위해 그의 아들을 주신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조화되어 주장되어야 한다. 그 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조화돼야 한다. 멸망받는 자에 대한 영원한 결정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죽음도 원치 않는다. 하나님은 구원을 받으려는 누구도 방해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3. 한국의 부흥운동과 영향: 한국에도 나운몽 장로에 의해 1950년대 이후 미국과 같은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전국적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부산 고신측이 나운몽에게 스카웃제의를 했다. 고신측 신학교에 적만 두고 고신측에서 활동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운몽 장로는 이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전도해야 하는 사람이오. 이중예정을 믿을 수 없소”라는 것이 이유였다. 나운몽 목사는 처음부터 감리교 장로였고, 만인구원론의 감리교인으로 일생을 바쳤다. 나운몽 목사는 “회개하라, 회개하면 성령받는다”고 외쳤고, 성령역사를 통해 많은 사람을 예수 믿게 했다. 회개기도, 성령체험, 예수밖에 없다는 복음전도였다. 부흥운동의 3요소인 기도, 성령체험, 복음전도가 그대로 한국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 당시 나장로가 설교한다면 장로교, 성결교가 따로 없었다. 미국이 부흥역사의 영향으로 시민사회가 일체감을 가졌던 것처럼 한국도 같았다. 그만큼 당시 나운몽 장로는 교단에 구애받지 않는 초교파 성령운동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교단이 구원 주는게 아니고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일체감이 교인들에게 형성됐다.
신앙도 하나가 됐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신앙사상의 일체감이 한국 교회에 형성된 것은 나운몽 목사의 영향이다.
아직 칼빈주의 교회 지도자들과 웨스트민스터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국교회 교인들은 대부분이 교파를 막론하고 “누구든이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신앙 사상을 갖게 됐다. 성령체험은 이중예정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복음주의 임열수 총장은 “한국교회는 다 오순절파가 됐다.”고 말했다. 한신대 이장식 교수는 “한국교회 교인들은 다 알미니우스주의자로 바뀌었다. 그 영향은 부흥운동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알미니우스가 원래 킬빈주의자였지만 바뀐 것처럼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한국교회 전체 분위기와 트랜드가 알미니안파로 바뀐 것이다. 이장식 교수는 이같은 “성령역사의 보편화는 나운몽 장로의 유산이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도 부흥운동으로 장로교 교리가 수정된 것처럼, 이미 한국교회의 교인들 마음속엔 수정이 일어난 것이다. 도르트회의 이후 이단시하고, 쫓아내고, 죽이고 했지만 알미니안주의 신앙은 부흥운동으로 이어갔고 한국에서 나운몽 장로에 의해 전국으로 온 교인들에게 퍼졌다. 그 결과가 오늘날 한국교회의 세계 유례없는 성장이다. 신현균 목사는 “나운몽 장로가 없었다면 한국교회 부흥은 없었다”고 말했다. 누구나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진리는 간단한 것 같지만 간단치 않았다. 선진들의 희생과 성령의 역사로 인해 얻은 이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한국교회가 잘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