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문 · 주간 신문“성경으로 과거를 해명한다! 성경으로 현실을 인도한다! 성경으로 미래를 예언한다!”성경으로 현실을 인도합니다
성경과 현실

성경과 현실

故 나운몽 목사 학술세미나 요약·해설 제3편

故 나운몽 목사 학술세미나 요약·해설 제3편 관련 기존 복음신문 사진
기존 복음신문 「故 나운몽 목사 학술세미나 요약·해설 제3편」 기사 사진 · 사진 복음신문 제공 · 복음신문 보유 원본
이 기사 공유

나운몽신학은 성경, 체험, 현장의 신학으로 전도에 큰 역할 …

전쟁 후 성령운동과 기도원운동 주도, 한국교회 부흥 일익

이덕주 교수 발표 논문 해설: (편집자 주)

이덕주 교수는 나운몽신학의 의미를 ‘성경’, ‘체험’, ‘현장’의 신학으로 정리했다. 이를 통해 나운몽의 신학이 ‘전도’를 위한 신학이며, ‘은혜’의 역사와 ‘실천’적 능력을 발휘하는데 효과적인 신학이었음을 명료하게 밝혀 주었다. 특히 이 교수가 나운몽신학의 특징으로 지적한 ‘포괄주의 전도신학’은 오늘날 배타적 공세적 이미지로 바판받으며 정체현상을 빚는 한국교회에 새로운 실효적 전도의 모델이자 대안으로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 하다.

또 ‘역사를 이끄는 교회의 사명’을 중시한 나운몽의 ‘민족주의 정치신학’에 대한 제시는 개교회주의와 개인주의 신앙에 함몰된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기독교의 선지자적 역할과 사회참여적 비전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한편, 이 교수는 나운몽신학의 긍정적 면을 강조하면서도 그 한계에 대한 지적을 잊지 않았다. 이는 명암을 모두 탐구하므로 한계의 ‘극복’이라는 명제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보완적 시각을 본란에 적시하고자 한다.

이 교수 논문의 나운몽신학의 특징 중 ‘문자주의 성경신학’에 있어 성경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한 나머지 문자에 지나치게 치중한 한계가 지적됐다. 일면 그같은 부분이 있지만, 성경을 통채로 성경에 쓰여진 그대로 믿으려 한 것이라고 보면 더 정확할 것 같다. 즉, 나운몽은 전통신학에서 성경을 해석하지 못해 난제로 처리된 부분이나 이성적 판단으로 변질시켜 합리화하려는 시도를 배격하고 성경을 통해 답을 찾는 ‘성경 중심의 신학’을 추구했던 것이다. 나운몽이 문자주의에 그쳤다면 창조6일의 하루를 24시간으로 이해했어야 한다. 나운몽은 창조 과정에 대해 지구 역사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을 인정한다든지, 우주 전체의 창조과정으로 이해하는 등 ‘무조건적 문자주의’가 아닌 성경말씀의 ‘합리적 무오주의’를 추구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나운몽이 서구신학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비판적 수용과 그 대안을 성경말씀을 근거로 끊임없이 제기하므로 난제 없는 성경의 무오성을 밝히기 위한 노력으로서 신학사상을 전개해간 이유이다. 나운몽은 오히려 유·불·선의 몽학선생으로서의 역할을 주장한 데서 알 수 있듯 ‘진리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말로 대변될 만큼 문자에 머물지 않는 신학사상 전개의 일면을 보였다. ‘포괄주의 전도신학’의 한계로서 이 교수는 나운몽이 유·불·선의 구원가능성에 대해 풀리지 않는 난제로 남겼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나운몽은 유·불·선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했고, 대신 성경적 해석인 ‘연옥설’을 통해 자신의 평생 숙제였던 기독교 전파 이전의 구원 문제에 대한 성경적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나운몽의 ‘종말론적 역사신학’의 ‘개조역사 6천년’에 대한 이해도 기독교사상을 중심한 서양철학(종교사상)적 역사 이해가 ‘시작(창조)’과 ‘끝(종말)’이란 직선적 시간적 진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이해 가능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초대교회 신도들 때부터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보았고, 중세 카톨릭의 신비적 말세론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1530년에 종말이 시작된다고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루터는 인류역사 6천년설에 근거하여 1540년이 인류역사 5500년과 일치하며, 그리스도께서 선택된 자를 위해 그 때를 줄이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6천년이 완성되기 전(500년 남은 시점)에 오신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성서 번역이 끝나기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칼빈 역시 날짜를 못박지는 않았지만 종말론적 신앙인이었다. 현대의 인본주의와 과학적 사고가 결합하면서 종말론적 사고가 치부시되고 있지만,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 자체가 종말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일시를 못박지 않는 이상 교리적 무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민족주의 정치신학’의 한계에 대한 이해도 시각차가 존재한다. 나운몽은 성경적이라고 믿었던 반공에는 철저했지만, 1968년 북한의 푸에플로호 납치사건으로 북·미 비밀회담 때 미국을 비판한 2·7의거를 주도했다. 또한 이미 1950·60년대 당시 좌익이나 우익적 가치가 아닌 한반도 주변국 모두의 협력을 아우를 협의체로서 6자회담 개최를 주장했고, 미국을 의지하는 한·미연합이 아닌 영세 중립국을 표방한 통일외교로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나운몽은 보수적 편향적 가치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경적 가치를 기준한 사회구원을 추구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제 우리는 그의 수많은 신학적 도전을 이 시대에 선지자적 사역의 시너지로 부활시킬 과제 앞에 서있다. 이를 위해 그의 신학을 서구신학의 틀로 볼 것이 아니라 ‘한국적 신학’의 세계화라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본다면 나운몽신학은 전도의 무한한 길을 열어 줄 수 있다.

일례로 ‘스스로 존재하므로 가능하다’는 창조주에 대한 그의 ‘존가능 이론’이 미국 노스웨스턴대 윤리학 박사학위논문(2004)에 소개되 신학계뿐 아니라 철학계까지 주목을 받은 일에서 볼 수 있듯, 전통신학적 선입견 없이 동양철학적 해석이 수반된 새로운 시각의 그의 신학이 한국적 ‘자신학’의 자산이 되고,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신학계에 가세한다면 오히려 세계 기독교의 교리적 전통을 견고히 하고 선교적 이해를 확장하는 데 무한한 보고가 될 수 있다.

이는 이 교수가 나운몽신학의 수용과제를 다룬 결론에서 전통과의 소통을 지적한 것처럼, 나운몽신학이 전통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전통의 매개적, 보완적 역할로서 자리매김하는 일이 될 것이다.

‘애향숙 용문산기도원과 기도원운동’ 서영석 교수(협성대)

한국교회사를 얘기할 때 항상 찜찜했던 부분이 용문산기도원운동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었던 점인데, 이번에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는 점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용문산기도원은 끊임없이 이단시비가 걸리므로 나운몽과 용문산운동이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려움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단시비에도 불구하고 용문산기도원은 전쟁을 전후한 혼란기에 성령운동을 확산시켰고,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기도원운동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