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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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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아니다

GOSPE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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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자(히 10:25)”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가 크게 오해를 받고 있다. 처음부터 신천지에서 코로나 확산이 있어 왔기에 그리되었다.

사실 따져 보면 예배가 코로나를 확산시키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확산 되는 것이다. 코로나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교회에서는 한 사람도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예배가 코로나를 확산시키면 예배를 금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예배가 아니라 코로나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코로나가 확산 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교회의 예배를 금지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교회는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모이려면 코로나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칼빈과 루터를 동원하여 비대면 예배를 권하지만 그들의 말이 예배를 드리지 말란 말이 아니다. 방역을 철저히 하란 말이다.

구약에서 전염병자를 격리시키라 하는 것도 예배를 드리지 말란 말이 아니라 전염병 확산시키면 안 된다는 말이다.

교회가 코로나 확산의 주범인 것 같이 방송과 신문에서 계속 말하니까 일반 국민들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면 “예배 드린다”라고 범죄 신고하듯 신고하고 있다. 전 세계 57개국 266개 단체가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코로나 방역한다고 종교 자유를 탄압하고 교회를 희생양 삼아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종교 자유는 “빼앗을 수 없는 권리”라 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교회를 향해 “비대면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하였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비대면 예배”라는 말 자체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말하지 말고 대화하라는 말과 같다. 모여야 예배드릴 수 있는데 모이지 말고 예배드려라 하니 말이 되는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셨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명하셨다. 거룩이란 말은 하나님과 관계된 말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란 말이다. 다시 말해 주의 날이다. 이 주의 날,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영원한 안식에 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신 것이다. 주의 날이니까 나의 일을 접고 나의 공부도 접고 나의 여행도 접고 나의 즐기던 것도 접고 오직 주와 함께 시간을 갖고 주를 찬양하고 주께 감사하고 주와 대화하며 주의 말씀 듣고 하는 것이 주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니까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이 것이 예배이다. 예배는 예를 갖추어 하나님께 절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라고. 혼자서도 예배드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께 예배드리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미련한 전도를 통해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도, 예수님께서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하신 것도 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교회가 조직되었다. 교회를 “에클레시아”라 하는데 그 뜻은 ~로부터 불려 나온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세상에서 주의 불림을 받고 나온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그 몸의 머리는 예수님이고 성도들은 지체들이다. 지체들인 각각의 교인들이 머리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한 몸, 교회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다 너희는 가지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말라 불에 던져진다고 하셨다. 가지와 포도나무가, 지체와 몸이 하나 되는 것은 마음으로 또 영적으로 하나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산 제사이다. 이 진정이 없으면 아무리 교회 예배에 참석하여도 성전 마당만 밟을 뿐이다. 그런 예배는 주께서 받으시지 않으신다.

반대로 주께 대한 사랑과 진실 된 믿음이 있어도 교회 예배에 참석치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마음에 있는 것을 내용이라 하면 담아 내는 형식이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아무리 믿음이 있어도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 하지 않는가. 우리 마음에 주께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어 혼자 예배드려도 주께서는 아신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셨다. 두세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다 이루리라 하셨다. 혼자보다 최소한 두세 사람이라도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주께서 기뻐하신다. 예배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주의 날, 주일에 경건한 마음으로 각각의 지체들이 머리 되시는 주님과 만나 여러 지체들이 하나가 되어 주께 한마음으로 경배드리고 한목소리로 소리 높여 주를 찬양하고 주의 말씀을 전해 듣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참된 예배이다.

예배의 본질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니 코로나 확산시켜 백성들을 해하지 말고 비대면 예배를 드려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예배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예배가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백성들을 구하는 일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봉헌하면서 이곳에서 기도하는 모든 것을 들어 주소서 범죄, 전쟁, 기근, 온역, 환란을 당해 기도할 때 들어주소서 기도하였다.

정부가 교회를 향해 당신들 섬기는 하나님께 이 코로나 온역을 물리쳐 달라고 좀 구해 주시오 부탁해야 맞는다.

비대면 예배를 드리라고 하지만 그것마저 드리지 않고 잠이나 실컷 자자 하는 교인들도 있을 것이고 놀러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밀렸던 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대면 예배를 드린다 해도 교회 나갈 때처럼 옷을 새로 잘 차려입지도 않고 입던 옷 그대로 TV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누워서 TV 설교를 듣고 기도를 들을 수 있다. 예를 갖추어 절하는 마음, 경외하는 마음을 비대면 예배에서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자기가 예배의 주체가 되어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객관적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개신교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 말씀 전하는 설교에 있으니 비대면 예배도 괜찮다고 하지만 예배가 설교 들으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지체가 한 마음으로 한 주님을 향하여 마음과 시간을 드리며 한목소리로 찬양하고 합심하여 기도하고 주와 하나 되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 나와 아버지가 하나인 것처럼 저희도 우리와 하나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기도가 이뤄지는 예배가 비대면 예배에서 이뤄질 수 있는가. 흩어져 있던 여러 지체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어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의 믿음을 확인하고 믿음의 성장이 이뤄지는 현장이 예배이다.

무디에게 한 교인이 “교회에 안 나가도 신앙생활 잘하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였다. 무디가 난로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는 석탄불에서 불덩어리 석탄 하나를 집게로 집어 땅에 내놓았다. 그 불덩어리가 점점 식어가며 까만 석탄 덩어리가 되었다. “보십시요. 아무리 열심 있고 신앙이 좋아도 교회에서 떨어지면 이렇게 됩니다. 혼자 믿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없습니다.”라고 무디가 말하였다.

초대교회 역사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받을 수 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예수님의 명을 받들어 120 문도가 헤어지지 않고 모여 전혀 기도할 때 성령의 강한 역사가 일어나 방언이 터지고 담대히 예수를 전하였다.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소리높여 교회에 핍박이 닥쳤지만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하옵시고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여 주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예수 이름으로 이뤄지게 하옵소서 기도할 때 모인 곳이 진동하였다.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고 무리가 다 담대히 말씀을 전하였다. 모일 때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능력이 나타난다. 비대면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아니다.

한국 교회가 비대면 예배를 예배로 인정한다면 앞으로 교회 나오지 않는 교인들에게 교회 나오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 나오지 않는 교인들이 나 혼자 예배도 예배라 주장할 것이다. 교인들이 점점 예배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고 신앙이 점점 약해져 비신앙인이 될 것이고 교회는 문 닫는 교회가 속출할 것이다.

정부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을 하지 말고 최소한 교회를 방해하지 말아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국민이 많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코로나 방역을 철저하게 하여 백성들의 본이 되어야 하고 남의 유익을 위해 힘써 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