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 정국은 무엇을 말하나 … 하나되기 위해 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나라가 어수선하다. 국회는 표류하고, 파업은 늘어가고, 북핵위기는 커지고, 시국선언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시국선언에 95개 대학 4,500여명의 교수들이 참여했다. 6.10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를 성취하며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렸던 22년전에도 교수들의 호헌반대 시국선언이 있었다. 이 선언은 결국 5공정권을 종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때 시국선언에 나선 교수가 500여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의 규모가 놀라울 정도다.
불교 조계종은 전국 종단 승려 1,447인이 참여한 시국선언을 15일 발표했다. 기독교계도 권오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를 비롯, 기장, 감리교, 예장통합, 예장합동, 성공회 등 교파를 구분하지 않고 목사 1022명이 18일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기독교장로회도 16일 공권력 남용 자제, 표현·집회·언론의 자유 신장, 사회경제적 약자 배려, 남북 평화 정책 등을 촉구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사제 1,178인 명의의 시국선언을 냈다. 천주교 전체 사제의 3분의 1이 참여했다. 시국선언은 문화계, 법조계, 의료계, 시민단체, 학생들까지 번지고 있다.
시국선언에 반대하는 맞불 성명도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수들’ 128명이 시국선언을 우려하는 성명서를 12일 발표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12일 “선동세력”의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보수시민단체인 선진화교수연합, 선진화시민행동 906명도 17일 “현 시국을 왜곡선동하는 세력은 각성하라”고 반대성명을 냈다.
시국선언이 규모와 범위, 맞불 성명까지 전례없는 양상을 띠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보면 보수성향의 인사, 평소 과격행동을 싫어하는 인사가 상당수 포함돼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한 보수성향의 이상돈교수는 “교수사회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기껏해야 10% 정도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행동보다는 성찰과 분석을 앞세우는 교수들의 체질상 일반 대중의 여론이 반영돼있다고 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1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민의 59.6%는 시국선언에 “공감하는 편이다”, 32.2%는 “공감하지 않는 편이다”고 답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단 한명의 주권도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본다. 과반수 이상의 국민이 공감하는 시국선언을 폄하할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두 편중 한 편이 되고 만다. 한국사회가 극명히 갈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시국선언 자체가 아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고, 사안마다 다를 수 있는 견해를 나누기 보다는 좌파냐 우파냐를 가리려는데 있다. 우리 사회는 진보는 좌파가 되고, 보수는 우파가 되는 양 극단만 존재한다. 과거 해방정국의 어지럽던 때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그러나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을 단순히 ‘일부 좌파 교수’로 치부한다면 사회의 골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가 나만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몰아 부치면 지금의 극한 대립은 결코 끝날 수 없다.
더욱 불행한 것은 중재자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갈등 요소를 풀어내고, 합의를 끌어내서 국민이 갈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오히려 사회적 대립에 편승해 반사이익을 보려는 기회주의로 만연해 있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기 직전까지 흙탕물이 튈까 거리두기에 골몰하더니 갑자기 “이명박 정권과 보수 언론에 타살 당했다”며 그의 후신인양 자처한다. 거리투쟁에 나가 등원의 5대 선결조건을 내걸고 국회를 팽개치고 있다. 국회의석의 과반을 넘는 한나라당은 포용력과 결단을 보이지 못하고, 내부에선 쇄신론을 둘러싼 공방에 계파간 세력다툼까지 여념이 없다.
국회는 회기 막바지까지 일정조차 못잡고 대의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있다. 당장 처리가 필요한 비정규직법과 여타 민생 법안들이 방치돼있다. 민생현안이 오리무중에 빠져있는 사이 파업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1백만이 넘는 실업자, 350만명의 ‘사실상 실업자’가 당장 먹고 사는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사는게 힘들어 자살자도 늘고 있다. 상하위층 소득격차는 8.4배로 사상최대로 벌어졌다. 수출은 20%대의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물가상승 압박이 재연되고 경기지표는 앞날을 예측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바로 위에서는 북핵위기가 커져만 간다. 국민이 똘똘 뭉쳐 난국을 헤쳐가도 시간이 부족한 판이다.
현재의 정국을 어서 빨리 수습하고 국민의 흩어진 마음을 모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대통령은 하루가 모자르듯 이곳저곳 분주하게 다니며 애쓰지만 국민은 여전히 답답하고 나라는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이 새벽잠을 잊고 연구하고 장관들을 독려해 나라를 위해 일하는 모습이 국민의 가슴에 와닿지 않고 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11:18,19)
왜그럴까. 이유는 단 하나다. 소통이 없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때문이다. 부르도저식 일추진에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국민은 예측 가능한 정부이기를 원한다. ‘4대강 살리기’에만 정부예산 22조원을 쏟아 붓는데 대해 국민들은 의아해한다. ‘대운하 연계설’이 떠나지 않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16일 “경인운하는 대운하사업의 1단계”라고 밝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의료 민영화’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국민은 여전히 불안하다. 물, 전기, 가스, 의료와 같은 사회적 필수재는 국가와 공기업이 맡아줘야 하지만 이 정부에서는 초조해진다.
국민은 모든 국민의 정부이기를 원한다. 어느 편이 아니라 반대 입장의 목소리를 포함해 모든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한다. 가진 자, 부자를 위한 정부라는 인상부터 바꿔야 한다. 재벌위주 정책, 신자유주의 성장정책, 공익성을 우선하지 않은 규제완화정책 등이 양극화심화, 생태환경파괴를 부르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가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듣기조차 않으려 해서는 안된다. 소통을 차단하는 것은 독재의 모습이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은 “현 정부에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권력기관의 편향성 논란도 높아진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 경찰의 무리한 진압, 감사원의 표적 감사로 인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말을 듣고 계시므로 우리 모두와 소통할 수 있다.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4)
우리는 원래부터 한 지체, 한 민족이다.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국민에게 다가서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마지막 희망은 국민뿐이다. 우리 국민은 반만년 역사동안 똘똘 뭉친 힘으로 온갖 어려움을 통과해온 세계 일등 국민이다. 소통의 제1원칙은 ‘섬김’이다. 우리 인간과의 소통을 위해 오신 예수님은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지금의 혼돈이 소통의 전기가 되고, 국민 통합을 위한 변화의 기회가 되기를 기도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