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의 동상이몽 현실화 …
정확한 이해와 분명한 전달자 없으면 북핵 위기 해소할 수 없음 성경이 교훈 (고전 14:8, 9)
지난 2월 27부터 28일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안타까운 일일까, 오히려 잘된 일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회담은 처음부터 양측의 입장차가 커서 합의를 한다면 스몰딜이 될 것으로 예상됐고, 스몰딜로는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많다는 우려가 많았기 때문에 합의 결렬은 애석하지만 나쁜합의 보다는 낳은 결과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복병이 현실화되고 말았다. 한미 연합 훈련이 영구 폐지된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과는 상관없이 한국 안보에 크나큰 위험 부담이 생긴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협상의 중재자임을 자처하지만 한국은 북핵 위기의 당사자이다. 당사자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위기의식을 가져야 함에도 우리 정부의 태도는 너무 안일하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더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한미훈련 폐지에 쌍수 들고 덜컥 합의해 준 정부의 인식이나 행동을 보면 더욱 그렇다. 물론 문 대통령은 안타깝게 우리에게 현실화한 위기로 닥친 북핵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여전한 북한의 대변자 같은 발언이나 방법을 보면 과연 지금의 이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그렇다면 북핵 협상과 관련된 한반도 정세의 변화와 위기 요소,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하나 하나 풀어보자.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처음부터 합의가 불가능한 회담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양측의 간극이 너무 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난 것은 사실상 ‘예고된 수순’이었다고 분석했다.
WSJ은 ‘핵 협상은 정상회담 이전에 좌초했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몇 주 전부터 결렬을 예고하는 틀림없는 징후들이 있었다. 미국과 북한의 눈높이가 너무 달랐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회담을 강행하지 않는 게 통상적인 외교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1~25일 하노이에서 열린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의 막판 실무협상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때도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조건으로 핵심 대북제재 5건을 푸는 방안을 요구했다. 그 때 미국은 “안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양측 정상은 회담을 밀어붙였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복스(Vox)라는 인터넷 언론은 회담 시작 전에 비건과 김혁철 사이에 작은 합의가 있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북미가 평화선언, 한국전쟁 유해송환,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 영변 핵물질 생산 중단과 남북경협 허용에 합의했다는 내용이다. 회담 전에 스몰딜 가능성이 흘러나온 이유다. 복스는 다만 트럼프-김정은 회담에서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고 덧붙여 실무합의가 잠정적임을 전했다. 결국 정상회담은 크게 달랐다.
WSJ는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내세우며 상대방의 과감한 결단과 양보에 기대를 걸었지만 양측 모두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측에 더 과감하게 나설 것을 요구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올인’하도록 독려했다”고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전했다. ‘올인’은 모든 돈을 한판에 거는 단판 승부다.
북한은 이 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전직 당국자는 “두 지도자의 개인적 친분만으로 좁히기에는 북미의 간극이 너무 컸다”면서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정상회담 이전에 해결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회담 전부터 양측의 간극이 너무 컸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측은 이미 결렬 이후의 전략을 정해두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신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것은 ‘빅딜(일괄 타결)’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빅딜이 아니면 결렬시킨다고 마음을 먹고 회담에 임했던 것이다.
28일 오전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칭찬하며 분위기를 한껏 띄웠지만, 이미 속으로 ‘결렬’을 생각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전부터 여러차례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이 이유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결렬 가능성에도 대비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폼페이오 장관은 ‘영변만으로 합의하면 곳곳에 핵을 숨겨둔 젊은 지도자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북한의 제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또 “참모진은 일괄타결 방식이 성공할 가능성을 사실상 제로로 봤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2월 27일과 28일 모두 네 번 만났다. 27일 오후 단독회담과 뒤이은 확대 만찬, 28일 오전 단독회담과 확대회담이 그것이다. 공식 회담 전날 만찬을 먼저 하는 등 분위기를 띄운 것도 통 큰 합의를 끌어내려는 일환이었다. 28일 확대회담에서 미국은 볼튼 백악관 보좌관을 추가했다. 전날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던 볼튼 보좌관이 확대회담에서 역할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볼튼 보좌관은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 인사다. 확대회담에서 격렬한 논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 측이 회담 결렬을 각오하고 볼튼을 투입했을 것이다.
위 상황들을 보면 미국과 북한의 입장차는 매우 크다. 결렬 후 볼턴 보좌관이 미국 폭스뉴스, CNN, CBS 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빅딜‘, 즉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글과 영어로 된 문서를 건넸다”며 그러나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3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빅딜’을 받으라고 설득했지만, 그들은 그럴 의사가 없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은 영변 핵시설과 관련해 노후한 원자로와 일부 우라늄 농축시설,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 등 매우 제한적인 양보를 하면서, 제재의 실질적 해제를 원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결국 회담은 결렬됐다. 결렬 후에까지 양측이 진실 공방을 이어간 것은 양측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방증해 준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협상 결렬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원했지만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즉시 반박에 나섰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심야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일부 해제를 요구했을 뿐”이라고 해명성 반박을 내놓았다.
북미정상회담 뒤 필리핀을 방문했던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리용호의 주장에 재 반박했다. “북한이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제재해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여전한 양측의 시각차를 말해 준다. 유엔 안보리 제재는 총 11건이다. 이 중에서 북한은 5건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북한의 주장대로 일부 해제가 맞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다르다. 리용호가 말한 5건의 안보리결의(2270, 2321, 2371, 2375, 2397)는 2016~2017년에 채택된 것으로 북한 정권의 ‘목줄’을 압박하는 것들이다.
석탄, 철광석 등 주요광물 수출, 북한의 석유 및 정유제품 수입, 대북 투자, 해외 노동자 송출 등을 금지 또는 제한한 것이다. 이러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을 해제하면 사실상의 ‘전면적 해제’가 되고 만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북한이 풀어달라고 한 제재는 전체 대북 제재 가운데 90%에 달한다고 분석한다. 북한의 석탄, 원유·정유 거래와 해외 노동자 파견 등 북한의 ‘돈줄’을 죄는 핵심 제재를 풀면 북한 비핵화를 압박할 수단이 사라지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실질적인 대북 제재 해제와 다름이 아니다. 또한 이들 제재 해제 시 수십억달러의 돈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지원될 수 있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이들 제제를 풀어주는 댓가로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겠다고 제안했다. 북한은 회담 결렬 후 심야 기자회견에서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 말도 논란이 있다. 실무협상 기간 내내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의 범위에 대해 “오직 김정은 위원장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일관성 있는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도 “아직도 완전히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영변 핵시설 폐기 범위조차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실상은 이렇다. 정상회담 이틀째 회담에서 북한 측이 영변 지구를 폐기하겠다고 하자 미국 측은 핵시설 한 곳을 추가로 지목했다. 결렬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알려지지 않은’ 핵시설을 언급했더니 북한이 놀라더라고 밝혔다. 과연 그곳이 어디일까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한 동안 평양 인근의 강선 핵시설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핵시설은 그간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시설이다. 그 곳은 오랜 기간 북한의 핵 활동을 추적해 왔던 미국 정보당국이 찾아낸 분강 지구이다.
북한은 외부에서 탐지하는 것을 우려해 지하에 우라늄(HEU) 생산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지상의 움직임이나 건물로는 알 수 없어 미국 당국의 확인도 늦어졌다. 고농축 우라늄(HEU) 생산시설은 그리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은닉하기 쉽지만 전기가 많이 들어간다. 미국은 전기를 많이 쓰는 북한 지역을 이 잡듯이 들여다봤다. 이렇게 찾아 낸 분강 지구는 영변 핵 단지에 붙어 있기 때문에 “영변 단지를 없애겠다”는 북한 측의 제안에 대해 미국은 분강 역시 포함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반면에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영변 지구 폐기’로 한정했던 자신들의 전략이 흔들린다고 판단한 결과 완강히 거부했다. 북한과 미국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의부터 달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동안 알려진 영변의 원심분리기는 2000개 정도였다. 미 정보 당국은 분강 지구 시설에 영변의 5배인 1만 개 이상의 원심분리기가 가동 중으로 보고 있다.
사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대체할 핵시설들을 북한 전역에 만들어 놓았다. 미 정보 당국은 강선의 크기가 영변의 2배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 외에 희천, 박천 등 고농축 우라늄 핵시설을 비롯해 최대 100곳의 핵시설이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다는 분석이 있다. 따라서 북한은 영변을 포기할 준비를 단단히 해 놓았던 것이다. 그동안 영변은 북한 핵시설의 대표성을 갖기에 충분했다.
영변 핵 시설은 여의도 3배 면적에 원자로, 연구소 등 건물 400동이 들어서 있는 거대 단지이다. 1963년 소련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가 들어갔고 1986년부터는 5 메가와트 원자로가 가동됐다. 사용 후 핵연료에서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재처리시설은 1989년부터 가동돼 북한은 핵실험 때 쓰고도 현재 50kg 정도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엔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를 초청해 영변에서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작동 중인 우라늄 농축시설을 확인해 주었다.
북한은 이런 영변을 외국 전문가 입회하에 통째로 폐기할 테니 민생 관련 유엔 제재 5건을 풀어달라고 미국에 요구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