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은 한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최근 교육계에서도 한자교육을 다시 시키자는 의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까닭은 아예 한자를 배우지 못한 세대에서 단어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문제 즉, 문해력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를 들어 2022년, 한 카페가 예정된 웹툰 작가 사인회가 취소되자 “심심한 사과 말씀드린다”라는 글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심심(甚深)한”의 의미는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한 이라는 뜻으로 예의를 갖춘 정중한 표현인데, 이를 일상어인 ‘심심하다’ 즉,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의 뜻의 심심한으로 받아들인 네티즌들이 항의 소동을 일으켰던 일입니다.
이는 한글 전용 세대가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를 보고 빚은 에피소드인데, 이로 인해 젊은 세대의 낮은 문해력이 화제가 됐고, 국무회의에서 조차 이 문제가 언급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서울대 어느 학과에서 과제물 마감일을 금일로 공지한 것을 금요일로 알고 늦게 낸 학생들이 많았다는 뉴스가 세상에 알려져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고, ‘중식(中食: 점심)’을 중국 음식으로, ‘십분(十分: 충분히)’을 10분으로, ‘가제(假題: 임시 제목)’를 갑각류로 또한 저 역시 예전에 많이 착각하기도 했던 ‘사흘’을 ‘4일’로의 착각은 한자어의 이해부족으로 요즘 문해력 해프닝은 흔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립국어원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전에 등재된 일상어 표제어 48만여 단어 중 한자어 비율이 33.3%, 한자어+고유어 비율이 16.4%로 우리 일상어 어휘 중 한자어가 들어간 단어 비율은 약 50% 정도라 밝혔기에 우리나라에서는 한자의 의미를 알고 단어를 보면 단어의 의미가 확실하게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단어 중에 “낙심”이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낙심은 “떨어질 락”에 “마음 심”자로 구성된 단어입니다. 한자를 모르면 낙심이라는 단어는 발음대로 나는 단어이지만 한자를 알면 낙심의 의미가 와 닿는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들이 예상하지 못한 큰 충격을 받게 되면 마음이 쿵하고 가라앉지 않습니까? 바로 지금의 상황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이것이 낙심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도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 그가 복음증거 할 때 많은 핍박과 환난을 당했기에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고 더욱 힘내어 복음을 전파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사도 바울의 이 낙심하지 않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험한 세상속에서 낙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먼저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알로 새로워진다고 고백합니다. 진정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나이 들어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겉 사람은 후패 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의 영혼은 거룩해지고 새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낙심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들이 지금 당하는 환난은 경한 것, 가벼운 것이라 그것도 오랜 기간이 아니라 잠시 받는 것이라 언급하며 이 같은 환난을 통해서 우리는 영광을 얻기 때문인데 이 영광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것이고 가벼운 것이 아니라 중한 것이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이같이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고 믿음생활 이겨나가시기를 바랍니다.박 재 신 목사
은혜광성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