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29일 의학 교육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한국의대협회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외국 의료계 사례 타산지석 삼고 소명의식 회복해야 …
생명, 소외,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 새겨야 할 때 (막 3:4, 마 18:12~14, 마 9:12)
환자를 볼모로 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1998년 이후 의대 정원이 한명도 늘지 못한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고령화라는 미래 대비보다 과거에 못한 공백을 메우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와 전문의까지 시국선언과 사직결정에 나서면서 의료 대란이 확대되고 있다. 정부와 의협이 찬찬히 우리의 의료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대안 찾기에 나서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의대 증원이 불가결한 만큼 어느 나라도 의대 증원을 막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없는 외국은 왜그런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지역정원제’로 지방 의료를 보호 육성하고 있다. 지역정원제란 지방 거주 고등학생이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지역 의대에 진학하고, 해당 지역 의료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9년 이상 근무하는 제도다. 처음부터 지역 정원제를 일반 의사와는 다른 트랙으로 선발하므로 입학 커트라인도 더 낮다. 만약 결혼 및 개인 사정 등의 이유로 의무 근무지를 이탈하는 경우 전문의 자격 부여 금지, 정부 보조금 삭감 등의 패널티를 발빠르게 부과한다. 이 같은 강제적 규제로 젊은 의사들이 지역에서 근무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계약형 지역필수의 사제’로 지역의료기관에 장기근속하는 계약 방식을 도입해 의무 복무를 규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의사 측은 의사를 지역에 몇 년 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것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계약은 선택이지 강제가 아니므로 의사들의 주장은 맞지 않다. 다만 일본처럼 처음부터 트랙을 달리 해서 지역 의사를 육성하는 방안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신 지역 의료 지원과 함께 낮은 의료 수가 개선 등 지역 의료 체계 자체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또 일본처럼 지원을 늘리되 계약 위반 시 벌칙 요소도 결부시켜 안정적 인력 확보를 보장해야 한다. 독일은 의대 입학 정원을 연 5천명씩 늘리기로 했지만 전혀 반발이 없다. 오히려 독일 최대 의사 노동조합 마부르크 분트는 의대 정원 증가를 위해 정부가 당장 움직일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의사가 늘어나면 ‘진료 부담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대학병원이나 지역 공공병원 의사들은 진료과와 관계 없이 단체 협약을 통해 정해진 월급을 받는다.
의료 수가 적용을 받는 과(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와 그렇지 않은 과(성형외과, 안과, 피부과)가 나뉘는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개원의도 공보험(건강보험) 환자를 받는 경우, 최대 진료 횟수가 정해져 있어 수입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의사 수가 늘어나도 임금이나 수입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시스템이 확립돼 있는 것이다. 의사 양성 방식과 공공 의료 비중이 우리나라와 다른 독일의 의료 시스템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에 대비해 오는 2031년까지 의대 입학 정원을 1만 5천명까지 증원할 예정인 영국의 경우도 의료 환경이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영국에서는 한국의 ‘기피과’로 알려진 외과가 인기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국 의대생들이 전공을 택할 때 ‘사법 리스크’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법 리스크는 민형사상 책임을 의사 개인한테 지우는 것으로, 한국 필수의료 붕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의료 사고 소송이 제기돼도 NHS 소속인 병원이 부담한다. 또 의사 대부분은 의료방어조합(MDU)에 가입되어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의료 수가 문제와 사법 리스크 등의 문제가 없는 영국에서는 의대 증원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우리 정부도 이 같은 개선 방향으로 ‘의료사고 특례법’ 제정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만 의료계와 환자 단체 모두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어 접점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외국의 경우 엘리트 의식이나 특권의식보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소중히 생각한다. 제네바선언으로 확정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의사의 길에 있어 불문률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의사들은 인류에 대한 봉사, 의업에 대한 명예, 생명에 대한 존중, 의술의 베품이라는 명제가 의사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인류에 대한 봉사자로서 생명을 책임진 직업윤리가 의사의 명예와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영국 의학저널 BMJ에 따르면, 일본 의사들은 공개적으로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긴다. 의사 증원과 수입이 직결되지 않는 독일도 의사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특별한 직업이라는 전제 때문에 확립된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의사만 되면 성공한 것으로 인식돼 소명이나 적성을 따지기보다 공부 잘하는 순서대로 의대를 지원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 의사의 직업윤리와 소명의식은 뒷전이 됐다. 27년 간 현 의료 체제를 수술하지 않고 내버려 둔 결과 계속 커지는 의료 파이를 나만 독차지해야 한다는 선민주의가 고착화된 단계까지 왔다. 어려서부터 탁월한 실력과 관련 경력을 축적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 영역에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기득권 카르텔화된 의사집단의 직업 지키기 집단행동은 이처럼 처음부터 잘못 형성된 우리나라의 특수환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변화에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잘못된 의료체제를 바꾸어야만 미래의 의료환경에 대비할 수 있다. 수술 날짜를 기다리다 죽지 않아도, 병원에서 하루종일 진료차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도록 의사의 명예가 소중한 것과 함께 건강을 잃을 수도 있는 경각의 환자가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을 바리새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답하신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막 3:4)”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죽여도 되는 것이 아님을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생명을 버려둔다는 것은 의업에 있어 있을 수 없다.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고 요구할 말을 하고 협상을 해도 해야 한다. 생명을 볼모로 어떤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예수님의 준엄한 꾸짖음을 지금도 들어야 할 때이다. 한정된 의사 인력이 돈 되는 과와 지역으로 몰리기 때문에 소아과 산부인과 등 많은 필수 의료 분야와 지방 의료가 길 잃은 양처럼 소외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은 약자들에게 먼저 다가가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용기를 넣어 주셨다. 모든 환자는 건강한 사람에 비해 삶의 약자이다. 의업 이탈과 집단행동으로 인해 그들이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저버린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2~14)” 소외 지역과 분야를 비롯해 삶의 끝에 선 모든 환자들을 다시 건강한 사람으로 돌려놓는 더할 수 없는 값진 소명이 의사들에게 주어졌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 이 같은 소명의식과 인류에 대한 봉사직의 자리를 회복할 때 의사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의업과 의사의 가치는 그 무엇도 아닌 생명 지킴이에 있음을 인식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