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진노 피할 길 없고 용서 받을 길 없어 …
회개하지 않은 자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아 (요 9:31)
일본은 우리나라 시민단체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자발적으로 설치한 소녀상을 두고 주한 일본대사와 영사를 소환하는 등 사과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 10일 국무회의에서 일본정부의 자제를 촉구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위안부 합의는 군의 관여 및 일본정부의 책임 인정과 함께 사죄와 진정한 반성표명, 일본정부 예산을 재원으로 한 화해·치유재단 사업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도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만든 조각상으로 지난 2011년 12월 14일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1,000차 수요집회 때 처음 세워졌다. 해외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미시간 주에 세워졌으며, 2015년 11월에는 캐나다 토론토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었다.
일제치하 시 20만 명에 달하는 수많은 한국여성들이 일본군에게 끌려갔다. 여염집 규수들, 여학교 학생, 11-12세의 어린이부터 43세의 가정을 가진 어머니까지 끌려갔다. 슬픈 현실이지만 일본군들은 정조를 중시한 우리나라 여성을 가장 선호했다.
일본군 문서에 의하면 위안부들이 기거했던 위안소는 ‘군인오락소‘ 또는 ‘위생적인 공중변소‘로 불렸다. 질병이나 성병에 걸리면 발견즉시 처형을 당했다. 임신을 하면 태아와 자궁을 통째로 드러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반항하거나 말을 안 들으면 고문을 당했고 본보기로 다른 위안부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되기도 했다. 한국여성들은 일본군 앞에서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해방 전까지 우리의 딸들이 성노예로 유린당하며 피와 눈물을 흘리다 낮선 하늘아래서 죽어갔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애 2:11).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여성인권유린 문제가 아니다. 아직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우리 민족의 문제이며 또한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이웃 나라의 문제이다.
우리의 딸들이 당했던 유린은 우리 민족의 정조가 짓밟힌 것을 의미한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렘 8:19-21).
성경에서 처녀 또는 딸은 성스러움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주님은 처녀의 몸을 통해 잉태되셨다(마 1:23).
억눌린 백성의 연약한 모습이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자 재림하실 주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모습이다(요 12:15, 마 25:1-13).
우리 민족이 주의 사역자로서 복음 한국의 성스러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해방된 지 70여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아직도 사죄하지 않고 있고 아직도 일본정부의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역사학자 가세 히데아키는 “종군 위안부는 창녀였다”고 말했다. 창녀의 나라, 부모가 딸을 팔았던 나라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일본은 대체 앞으로 얼마나 화를 당하려고 하는가.
고통 중에 구원자가 없을 것만 같았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마른 뼈들의 살아난 환상과도 같이(겔 37장)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렘 8:21) 하나님이 마침내 칼을 빼어 드시고 우리의 딸들의 눈물과 우리 민족의 간구를 신원하여 주고 계심을 뚜렸이 알 수 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여호와는 고난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시 140:12)
우리 민족을 압제하고 죽이고 딸들과 민족의 정조를 짓밟았던 일본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일본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주님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고 하신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쳐 죽이는 무리들을 위하여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일본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일본은 전통적인 미신의 나라이다. 전국에 8만5천여 신사를 모시고 2만여 신을 섬기고 있다. 기독교인은 불과 전 국민의 1%가 되지 않는다. 기복중심의 미신 신앙은 아직 자신들의 잘못을 사죄하지 못하는 것처럼 일본 민족에게 양심에 눈뜰 기회를 주지 못했다. 일본에 어서 속히 미신이 타파되고 주의 복음이 전파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이 하나님께 용서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사죄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고 용서를 받을 길이 없다.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행 3:19).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구하면 주실 것(마 7:7, 8)이라고 약속하셨지만 회개하지 않은 자의 기도만은 들어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요 9:31) 다만,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는 길로 인도하는 것만이 이웃인 우리나라의 도리이며 온 유대와 이웃인 사마리아로부터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시던 주님의 분부(행 1:8)를 지키는 길이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요일 5:16).
우리 민족의 아픔과 억울함이 어서 속히 신원되고 일본이 회개와 용서의 길로 나아오는 그날이 오도록 더욱 힘써 기도하자. 또한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날이 오도록 기도하자.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