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 한국교회는 평양대부흥 100주년이 되는 해를 보냈다. 교계는 이를 계기로 한국교회의 재부흥을 기대하며 각종 초대형 행사를 기획했다. 그러나 재부흥의 불씨를 지피려던 기념성회는 이후 후속사업이 끊겼고 일회성 행사에 치중했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 재부흥에 대한 기대가 채 실망으로 바뀌기도 전에 곧이어 한국교회는 커다란 아픔을 겪어야 했다. 중동에서 순교자를 낸 아픔보다 더 크게 세상과의 괴리를 처절하게 느껴야 했다. 세상의 교회에 대한 비판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아프간 피랍사태는 국민들의 동정을 받아야 할 사건이었지만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전체 기독교에 대한 비판으로 확산돼 공론화되기까지 했다. 한국기독교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우리의 이상은 부흥이었으나 현실은 반대였고 오히려 비난에 처했던 것이 작년 한국교회가 맞은 상황이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작년에 이어 새해벽두부터 한국교회의 정체성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CBS가 작년말 안티기독운동에 대한 특집프로를 마련한데 이어 월간 ‘목회와 신학’ 신년호는 ‘반기독교 세력을 극복하라’는 주제로 특집기획물을 마련했다. 여타 기독교 언론들도 교회지도자들의 인터뷰기사를 통해 한국교회의 제자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한국교회는 90년대부터 성장을 멈추고 2000년대부터 뚜렷한 교인감소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이들과 중고등부와 유년주일학교 학생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신학 지망생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성경은 "네 눈속의 들보를 먼저 빼라"(마7:5)고 말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알기란 쉽지 않다. 한국교회도 그랬다. 잘못을 처음 감지한것은 2005년 통계청이 인구총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전체 종교인수가 늘어나고 타종교 신자수가 늘어난 것에 비해 기독교인수만 감소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때부터 교계에서는 각성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대부분은 관성적으로 흘러 자성의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 탈레반 피랍사태가 국가적인 이슈로 떠오르자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다. 국민 속에 내재돼있던 감정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교회는 비로소 문제점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교회는 오늘날의 침체기를 벗어내고 반기독교정서의 파고를 넘어 재부흥기로 나아갈 수 있을까? 2008년의 새해 벽두는 한국교회에 커다란 짐이자 숙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기회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국가가, 교회가 만들수 없듯이 부흥은 사람의 기획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수 없다. 하나님만이 주실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부흥을 위해 한국교회가 얼마만큼 준비되었는가이다. 우리의 문제를 알고 이를 해결한다면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다시 부흥을 주실 것이다.
첫째, 과시욕을 벗고 낮아짐으로 돌아가자. 교회는 속성상 약할때가 강한 것이며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최고가, 주류가 되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과감히 모든 것을 내어 던지고 비주류가 될때 참다운 기독교가 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27-29) 그것은 '나'를 세우려는 발걸음을 '모두'를 위한 길로 돌리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세를 과시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대규모 행사에 익숙해져 왔다. 교인들의 피땀흘린 헌금을 부추겨 화려한 교회, 큰 교회 짓기 경쟁에 나섰다. 알게모르게 교인들은 목회자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교회가 목회자 중심으로 구조화돼 평신도들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깨졌다. 하나님께서 천군만마보다 소중하게 여기신 잃어버린 양이 한사람의 교인임을 잊은 결과다. 교회에 등을 돌리고 기독교를 떠난 교인은 현재 860만 교인수만큼에 달한다. 목회자 혼자가 영광을 받는 교회가 아니라 평신도 모두가 교회의 주인이 되어야 교회가 산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둘째, 부흥의 원동력인 성령의 은혜를 회복하자.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 한국교회가 평양대부흥에서 부흥의 원류를 찾고 있지만 100년전의 부흥을 임의로 재현할 수는 없다. 구약시대에 희년을 둔 이유는 50년만에 한번씩 회개와 반성의 기회를 통해 잃어버린 신앙의 본령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성령은 회개의 역사이며 성령의 역사가 없이 부흥은 있을 수 없다.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겪으며 부흥의 불씨가 소멸되가고 있을 무렵 한국교회는 평양 대부흥 50년만에 다시한번 대부흥의 시기를 맞았다. 한국교회에 5-60년대에 다시 지펴진 대부흥의 시기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신앙이 뜨거워진 교인들의 헌신으로 교회는 성장을 가속화시킬 수 있었다. 이때의 부흥은 평신도들이 주동이 된 평신도부흥운동이었다.
그러나 교회 정치가들은 이때의 부흥의 열기를 제도화되고 고착화된 틀에 가두려하는 우를 범했다. 평신도부흥운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교회가 부흥의 줄기를 잃은 것이다. 대신 서로 정통을 내세우는 교파의 장벽을 높여갔다. 교파간 이단시비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지난정권의 이념논쟁의 폐해처럼 교리의 틀로 신앙을 해석하는 배타적, 독선적 신앙의 원인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교리가 아닌 성경의 본령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한국교회 부흥의 줄기는 묻혀졌고 교회는 성장의 수혜를 누리는 것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봉사와 헌신, 전도와 사역이 세상 밖으로 행해지지 못하고 교회안의 신앙으로 왜곡되기 시작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5:14) 성령이 사라진 교회엔 진정한 회개가 없어졌다. 40일 금식기도 현수막을 내걸고 회개를 자랑한다. 세상을 좇아 악행을 일삼다가 모양만 반복하는 회개, 대중앞에 자기 과시적 회개로 인해 양심은 화인을 맞았고 신앙은 위선의 탈을 쓰기 시작했다. "자기 양심이 화인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2)
세째, 성경으로 돌아와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성경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3 :22) 이는 성경의 '자구'가 낡은 역사가 아니라 현실속에 은혜의 역사를 일으키는 능력이 됨을 의미한다. 성경으로 돌아와 은혜를 사모할때 부흥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황의 권위에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16세기 가톨릭교회에는 교황이 내린 칙령과 추기경의 공의회가 내린 교리적 결정이 성경을 대신해 교인들을 지배했다. 개혁자들이 외친 ‘오직 성경만으로’의 구호는 교리나 교권이 아닌 은혜의 때로 되돌아가려는 개혁의 시작이 되었다. 말씀 중심의 삶이란 현실속에서 지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 호흡하는 길이다. 성경과 현실이 맞닿는 삶을 사는 생명의 길이다. 끊임없이 세상에 내재한 하나님의 섭리를 외치고 선포하는 성경적 삶이 교회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네째, 배타적 독선의 굴레를 벗어내자. 선교를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다. 타종교에 다가가지 않고, 대화하지 않고, 타종교인에게 감동을 주지 않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할 수는 없다.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는 없다. 오히려 한국교회의 독선적 배타성은 많은 교인을 타종교에 잃는 결과를 낳았다. 타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 신학에 이미 40년은 뒤떨어져 있다고 신학자들은 말한다. 한때 한국교회는 타종교의 선한 가르침마저 인정하지 않았다. 천하만물과 만인은 하나님께 속한 귀한 생명이다. 타종교인도 마찬가지다. 타종교를 성경의 넓은 울타리에서 생각한다면 자연스러운 선교의 길을 열 수 있다. 불교나 유교가 선한 가르침을 행해 복음을 받아들일 기반을 닦는 역할을 했다고 인정했다면 지금과 같이 기독교가 비호감 1위의 종교, 배척받는 종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령의 은혜는 교만하지 않으며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잠13:10)
결론적으로 이제 교회는 세속화된 부흥의 개념을 벗어내야 한다. 세상은 성장을 말하지만 교회는 구원을 말해야 한다. 세상은 현세의 성공을 말하지만 교회는 내세의 영생을 말해야 한다. 부흥이 세상의 가치를 좇는 성장의 개념이 되어선 안된다. 성장주의, 팽창주의는 교회의 본령이 아니다. 이제 교회는 영적인 부흥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봉사와 선행, 도덕성으로 무장하고 세상과 소통하자. 세상은 타락의 극도에 처해있다. 교회는 세상의 등대가 되어야 하며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낯선 이웃이 아니다. 억눌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자. 교회가 높은 위치가 되어선 안된다. 함께 나누는 위치에서 소통하는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서양의 선교가 많은 곳에서 불협화음을 낳고 거부당하는 이유는 '너희는 도움을 받아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2008년 한해는 교회의 사명과 본령을 회복하고 그 길로 나아가는 한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