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60년 10월 1일 · 주간(매주 주일 발행)“성경으로 과거를 해명한다! 성경으로 현실을 인도한다! 성경으로 미래를 예언한다!”국내 최초 기독교 종합 언론
사회

사회

“이 아이들도 우리의 이웃입니다”…여명학교 지키기에 나선 교회와 시민사회

“이 아이들도 우리의 이웃입니다”…여명학교 지키기에 나선 교회와 시민사회
여명학교 현 부지 학교 건립을 지지하는 시민사회 공동행동이 7일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배경 청소년을 위한 여명학교 교사 건립을 예정대로 추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 기사 공유

2004년 문을 연 여명학교는 서울의 유일한 북한 배경 학생 학력인정 대안학교다. 그러나 개교 이후 20년이 넘도록 안정적인 자체 교사를 마련하지 못하고 여러 공간을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런 여명학교가 서울 강서구 옛 염강초등학교 부지에 새로운 학교 건물을 마련하려 했지만 일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다시 앞날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탈북 배경 청소년 학교 건립 주민 반대에 난항

기독교·교육·시민사회 261개 단체 연대…시민 3만1,078명 서명

사회에서 밀려난 아이들이 또다시 밀려나지 않도록…한국교회 역할 주목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은 때로 자신의 자리를 얻기 위해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해야 한다.

북한 배경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여명학교가 그렇다.

2004년 문을 연 여명학교는 서울의 유일한 북한 배경 학생 학력인정 대안학교다.

그러나 개교 이후 20년이 넘도록 안정적인 자체 교사를 마련하지 못하고 여러 공간을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런 여명학교가 서울 강서구 옛 염강초등학교 부지에 새로운 학교 건물을 마련하려 했지만 일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다시 앞날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번에는 교회와 시민사회가 움직였다.

시민 3만1,078명, 261개 단체가 나섰다

‘여명학교 현 부지 학교 건립을 지지하는 시민사회 공동행동’은 7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명학교 교사 건립을 예정대로 추진해 달라고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의회에 촉구했다.

공동행동에 따르면 9월 28일부터 이날까지 진행된 서명에는 전국에서 3만1,078명이 참여했다.

참여단체도 크게 늘었다.

처음 100여 개 단체로 출발했던 연대에는 이날까지 261개 단체가 이름을 올렸다.

특히 이번 움직임에는 교육·시민단체뿐 아니라 기독교계의 참여가 눈에 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법률가회 통일법센터 LOOK,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성서한국, 좋은교사운동, 한국YMCA전국연맹을 비롯해 북한기독교총연합회, 한국교회인권센터, 한반도평화연구원 등 기독교 관련 단체와 여러 교회·신앙공동체가 참여했다.

특정 교단이나 한두 교회 차원의 움직임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교육권 문제에 다양한 기독교 공동체가 시민사회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교장이 두 번 무릎을 꿇어야 했던 학교

이번 논란이 더욱 안타까움을 주는 것은 여명학교가 이미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점이다.

여명학교는 2019년 은평구로 이전을 추진했지만 당시에도 주민 반대에 부딪혀 결국 이전 계획이 무산됐다.

그리고 지난 9월 17일 강서구에서 열린 2차 주민설명회에서는 조명숙 교장이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호소였다.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았던 청소년들이 학교 문제로 또다시 상처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재 사용하는 임시 교사의 사용 기간은 2027년 2월 끝날 예정이다.

주민들의 우려도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배척해서도 안 된다.

반대 주민들은 여명학교가 처음 현 부지에 들어올 당시 임시 사용을 전제로 했다는 점과 학교 건립 과정에서 충분한 주민 의견수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등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같은 부지에 유아교육 관련 시설이 함께 들어서는 데 대한 우려도 제기한다.

주민들이 생활환경과 시설계획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권리는 존중돼야 한다.

교육당국 역시 주민들이 제기하는 교통과 주차, 시설 이용 문제 등에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충분히 설명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선도 있다.

학생들이 북한 출신 또는 북한 배경이라는 사실 자체가 학교를 거부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행정 문제와 시설 문제는 협의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출신 배경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학교 하나’가 아니라 아이들의 자리

지난 7월까지만 해도 여명학교의 오랜 숙원은 해결되는 듯했다.

서울시교육청과 통일부, 현대자동차그룹, 사단법인 여명이 교사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계획대로라면 새로운 학교 건물을 지어 서울시교육청에 기부채납하고 여명학교가 장기간 사용하는 방식이다.

학교 하나를 세우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당사자인 학생들에게는 의미가 다르다.

북한을 떠나 중국 등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청소년 가운데에는 학업 공백과 언어·문화 차이, 가족 해체 등을 경험한 경우가 있다.

이들에게 학교는 단순히 공부하는 건물이 아니다.

새로운 사회에서 관계를 배우고 다시 삶을 시작하는 공간이다.

사회의 약자를 품는 교회

이번 사안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장면은 기독교 단체와 교회들이 시민사회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 하락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다.

교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홍보보다 교회가 사회에서 어떤 사람 곁에 서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

예수께서 관심을 기울인 사람들은 당시 사회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이방인,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과 함께하셨다.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마 25:35)라는 말씀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북한 배경 청소년 역시 우리 사회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그들을 돕는 일을 특정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의 문제로만 바라본다면 정작 눈앞의 아이들을 놓칠 수 있다.

도움받던 학생이 다시 이웃을 돕다

여명학교 교육이 단순히 학생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7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여명학교 졸업생 엄에스더 유니시드 대표는 여명학교에서 지식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헌신과 관심을 경험했고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여명학교 학생들이 서울역 노숙인과 쪽방촌 어르신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활동에도 참여해왔다고 소개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복지와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계속 도움받는 사람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서도록 돕는 것이다.

사회의 주변부가 교회의 주변부가 되지 않도록

여명학교 문제는 한국교회에도 질문을 던진다.

교회는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

목소리가 큰 사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내기 어려운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북한 배경 청소년뿐만 아니다.

장애인, 독거노인, 이주민, 위기청소년, 한부모가정, 경제적 취약계층 등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가 이들을 일방적인 구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 사람의 존엄을 인정하고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다시 얻는 길도 어쩌면 거창한 곳에 있지 않을지 모른다.

세상이 쉽게 지나치는 사람을 교회가 먼저 바라보는 것.

목소리가 작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때까지 곁을 지키는 것이다.

여명학교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학교 건물 하나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와 조금 다른 배경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교회에는 한 가지 질문이 더 남는다.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사람이 있을 때, 교회는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READER RESPONSE

독자 반응

공감은 로그인 없이도 같은 네트워크에서 한 번만 남길 수 있고, 댓글은 로그인한 회원이 작성합니다. 원본 IP는 저장하지 않습니다. 타인 비방·광고·허위정보 댓글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댓글 0로그인하면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의견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