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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리

OPINION COLUMNIST

복음시론남궁선서울한영대학교 명예교수GOSPEL TIMES
남궁선 필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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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을 읽다가 재미있는 표현 하나를 보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서 사용한 ‘좌아하게’라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이지?’하는 궁금증에 사전을 찾아보니 ‘좌아(坐衙)하다: 벼슬아치가 관아에 출근하여 있다.’라는 뜻이 있긴 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사용한 단어는 ‘우아하게’를 좌파 측 사람들이 ‘우아하게’에서 우(優)를 ‘우(右)’라는 의미를 지우고 ‘좌(左)’로 바꾸어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 시대의 언어가 얼마나 빠르게 만들어지고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 의미를 둘러싼 자신들만의 언어라고 하기에 한쪽 편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사실에서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편 가르기 양상이라는 해석을 부인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아(優雅)하다는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는 뜻이 있는데, 한쪽을 가른 ‘좌아하게’는 그동안 한국사회를 지탱해 오던 지도자의 책임과 덕목이었으며, 한국 사회를 이어온 고산하고 기품 있고 아름다운 정신적 지주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이다.

경제발전의 산업화갸 이루어지고 민주화운동으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한국사회가 아직도 한편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카르텔(cartel)이 최고의 지도자에게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좌아하게’라는 말을 한참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좌아’에서 ‘좌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물론 ‘좌리’라는 말은 사전에 있는 단어가 아니다. 필자가 만들어 본 말이다. 이 말 ‘우리’에도 저들이 주장하는 ‘우(右)’가 있기 때문이다. 즉, ‘좌(左)’와 ‘우리’를 붙여 놓은 말이다.

그런데 이 낯선 말 하나가 오늘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사람을 좌와 우로 나누어 보았다. 그러기에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생각이나 인격을 보기 전에 어느 편에 속해 있는가를 먼저 묻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생각이 다르면 틀린 사람이 되고,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상대방이 아니라 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자가 들어간 단어가 그렇게도 싫다면 ‘오른팔을 없애자.’고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환영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오른팔’ 고유어이며, 한자어로는 우완(右腕)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이 말을 없애고 ‘좌완(左腕)’이라고 표기하면 ‘왼팔’을 뜻하는 지체부자유자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없애야 할 것은 사람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어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음이다. 우리 사회에는 진보도 필요하고 보수도 필요하다.

젊은 세대도, 노년 세대도 필요하다.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할 때 사회는 더 건강해진다. 다름은 잘못이 아니다. 다름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다. 성경은 이것을 훨씬 더 근본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의 첫 문장이다.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라고만 하지 않으셨다. ‘우리 아버지’라고 하셨다. 신앙은 ‘나’에서 시작하지만 ‘우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 문장조차 “하늘에 계신 ‘좌리’ 하나님”으로 바꿀 셈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 역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자신의 문제만 바라보던 사람이 이웃의 아픔을 바라보게 되고, 나의 성공만 생각하던 사람이 공동체의 평안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너는 어느 편이냐?’라고 물을 때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 편입니다.’ 좌아하게 말하는 것도 좋다. 우아하게 말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편이 아니라 ‘우리’인지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을 위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와 같이 되게 하옵소서”(요17:21). ’좌리‘가 아니라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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