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일자리와 청년 빈곤의 그늘…성경이 말하는 노동의 가치는 무엇인가. 한국의 고용시장은 회복되고 있는가, 아니면 더 불안정해지고 있는가. 최근 발표된 통계는 두 가지 상반된 현실을 보여준다. 전체 취업자는 증가했지만 청년의 일자리는 줄고, 고용률이 개선되는 가운데서도 불안정한 노동의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청년 고용률 29개월 연속 하락, 비정규직 867만 명…일자리의 숫자보다 일하는 사람의 삶을 보아야 할 때
한국의 고용시장은 회복되고 있는가, 아니면 더 불안정해지고 있는가. 최근 발표된 통계는 두 가지 상반된 현실을 보여준다. 전체 취업자는 증가했지만 청년의 일자리는 줄고, 고용률이 개선되는 가운데서도 불안정한 노동의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10월 16일 발표한 ‘2026년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는 2,926만 6천 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만 3천 명 증가했다. 15~64세 고용률도 70.6%로 0.2%포인트 상승했다.
그러나 15~29세 청년 고용률은 44.0%로 전년 동월보다 1.1%포인트 하락했다. 청년 고용률은 29개월 연속 하락했고, 실업률은 5.4%로 0.6%포인트 상승했다. 청년 취업자는 14만 7천 명 감소했다.
전체 고용지표의 개선이 청년들에게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고용노동부가 2026년 4월 발표한 청년뉴딜 추진방안에 따르면 올해 1분기 15~29세 청년 고용률은 43.5%였으며, 구직·실업·구직활동 중단 등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20~30대 미취업 인구는 171만 명에 이르렀다. 이미 청년 고용률은 코로나19 이후 최저 수준이다. 정부는 인공지능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와 기업의 경력직 선호, 세대 간 구직경쟁 등을 청년 고용난의 주요 배경으로 지목했다.
문제는 취업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안정적인 임금과 사회보험, 안전한 작업환경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는 삶의 기반인 동시에 불안의 원인이 된다.
고용의 질에서도 우려할 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국가데이터처가 10월 21일 발표한 ‘2026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867만 1천 명으로 전년보다 10만 3천 명 증가했다.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5%로 0.3%포인트 높아졌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만으로 노동자의 빈곤이나 처우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용의 안정성과 사회보험, 경력 형성의 기회에서 발생하는 격차는 노동시장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문제는 일자리를 얻는 것만으로 안정된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자리의 숫자보다 중요한 노동의 질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 15일부터 포괄임금 오남용에 대한 하반기 기획감독에 착수했다. 실제 일한 시간에 대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이른바 ‘공짜 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다.
앞서 청년 다수 고용 사업장 10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상반기 감독에서는 34곳에서 관련 수당 미지급이 적발됐다. 올해 1~8월 포괄임금 오남용 관련 익명신고도 260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98건보다 크게 늘었다.
노동자의 권리는 고용계약서에 적힌 임금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실제 근로시간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휴식, 안전한 작업환경이 함께 확보되어야 한다.
노동환경의 변화도 빠르다. 배달과 대리운전, 프리랜서, 플랫폼 기반 업무 등 기존의 전형적인 고용관계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자리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노동은 개인에게 유연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계약관계와 사회보험 적용에서 보호의 공백을 만들기도 한다.
정부가 특수고용·플랫폼 종사자의 권리 보호와 사회안전망 확대를 추진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확산은 또 다른 과제를 던진다. 새로운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분명한 기회다. 그러나 기술 발전의 혜택이 기업과 일부 전문직에 집중되고, 다른 노동자에게는 고용불안과 소득격차로 돌아온다면 사회적 갈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기술의 진보가 곧 인간의 삶의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성과를 누구와 어떻게 나누느냐가 중요하다.
성경의 노동관, 인간은 세상을 경작하고 돌보는 존재
기독교 신앙에서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창세기는 인간이 세상을 경작하고 돌보는 존재로 부름받았다고 기록한다. 노동은 인간에게 주어진 창조적 책임이며, 공동체를 유지하고 이웃의 삶에 기여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성경이 노동의 가치를 강조한다고 해서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명령이 반복된다.
신명기 24장 14~15절은 가난하고 궁핍한 품꾼을 학대하지 말고 그날의 품삯을 지급하라고 명한다. 야고보서 5장 4절은 일꾼에게 지급하지 않은 품삯이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는다고 경고한다.
이는 단순한 자선의 권고가 아니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신앙의 윤리이자 정의의 문제라는 선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 역시 노동과 보상을 둘러싼 질문을 던진다. 이 비유를 현대의 임금제도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삶을 경제적 생산성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을 성찰하게 한다.
기독교적 노동관은 두 가지 가치를 함께 붙든다. 노동을 통한 책임과 성실함을 존중하면서, 노동하는 사람의 존엄이 생산성과 소득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회도 노동의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교회는 노동 문제를 사회 밖에서 관찰하는 기관이 아니다. 교회 자체가 사람을 고용하고 재정을 운영하는 조직이며,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공동체다.
교회 안에는 사업주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자영업자와 구직자가 함께 있다. 이들은 같은 예배를 드리지만 일터에서 경험하는 현실은 서로 다르다.
따라서 노동의 존엄을 이야기하려면 교회 내부의 고용관행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교회가 고용하는 행정직원과 시설관리자, 사무직원 등에게 적법하고 공정한 근로조건을 제공하고 있는지, 실제 근로시간에 대한 보상과 휴식이 보장되는지 살펴야 한다. 목회자와 사역자의 처우 문제 역시 각자의 법적 지위와 사역 특성을 고려하면서 공정성과 책임의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직업과 소득,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지도 성찰해야 한다.
성공한 사업가나 전문직 종사자의 간증은 주목받으면서 실직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교회는 세상의 경쟁 논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신앙공동체의 가치는 구성원이 얼마나 성공했는지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얼마나 존중하고 책임지는가에서 드러나야 한다.
노동의 존엄을 지키는 교회의 세 가지 책임
한국교회가 노동 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추상적인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첫째, 교회 스스로 공정한 고용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적법한 임금 지급과 근로시간 관리, 안전한 작업환경, 인격적 대우를 실천하고 교회가 발주하는 용역과 공사에서도 노동자의 권익이 존중되는지 살펴야 한다. 교회의 재정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노동의 기본적인 권리가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청년과 취약한 노동자의 자립을 돕는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 교회가 가진 전문인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직업상담과 취업 준비, 직무교육, 법률·노무 상담기관 연계 등을 지원하는 것이다. 특히 구직에 실패한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하라는 충고보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와 관계의 안전망이다.
셋째,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와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반드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정당한 보상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보장하면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영세사업장의 부담을 줄이는 지원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교회는 어느 한쪽의 이해관계를 무조건 대변하기보다 인간의 존엄과 정의라는 원칙 위에서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의 책임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노동 문제를 정치적 진영의 대립으로만 바라보는 태도와도 구별된다.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곧 기업을 부정하는 일은 아니며, 기업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이 노동자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일도 아니다.
기독교적 경제윤리는 인간의 노동을 존중하면서 그 성과가 공동체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사람을 위한 노동인가, 노동을 위한 사람인가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위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고용통계는 그 약속이 모든 세대와 계층에게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의 일자리가 줄고, 비정규직이 증가하며, 새로운 노동 형태가 기존의 보호제도 밖으로 확장되는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취업률 개선 이상의 변화다.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노동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한 보상과 휴식, 안전은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인간다운 노동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한국교회 역시 이 문제를 사회정책의 영역에만 맡겨둘 수 없다. 노동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웃 사랑을 말할 수 없고, 정당한 보상의 책임을 외면하면서 성경적 정의를 강조할 수도 없다.
교회가 노동의 존엄을 회복하는 출발점은 거창하지 않다. 자신이 고용한 사람에게 공정하게 대하고, 일터에서 어려움을 겪는 교인의 목소리를 듣고, 청년이 실패해도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와 사용자가 서로의 현실을 이해하고 공정한 제도를 함께 모색하도록 돕는 일이다.
경제는 성장할 수 있고 기술은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발전이 사람의 삶을 더 존엄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 물어야 한다.
기독교가 노동의 존엄을 말한다는 것은 노동을 신성하게 포장하는 일이 아니다. 노동하는 사람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 사람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이다.
사람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사람의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오늘의 노동 현실 앞에서 분명하게 붙들어야 할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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