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단계를 넘어 교회가 AI를 어떤 원칙 아래 사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예장합동 ‘AI 윤리 및 신앙 활용 가이드라인’ 공식 채택
AI 목회지원 논의 본격화…사용 여부 넘어 신학·윤리·책임 기준 필요
목회자가 생성형 AI를 이용해 설교 자료를 찾고 교회학교 교사가 AI로 교육자료를 만드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질문은 주로 하나였다.
“목회자가 AI를 사용해도 되는가.”
그러나 이제 질문이 달라지고 있다.
AI를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단계를 넘어 교회가 AI를 어떤 원칙 아래 사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은 지난 9월 제111회 총회에서 ‘AI 윤리 및 신앙 활용 가이드라인’을 공식 채택했다.
가이드라인은 AI를 영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개발한 도구로 규정하고 성령의 역사나 인간의 영적 판단을 대신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아울러 표절 방지, 교리적 검증과 목회자의 책임 등을 강조했다.
이 결정의 의미는 작지 않다.
AI 문제가 일부 목회자의 개인적 관심사를 넘어 교단이 공식적으로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목회정책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AI가 설교를 도울 수는 있다
생성형 AI는 목회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성경의 특정 주제를 정리하고 긴 자료를 요약하며 교육자료 초안을 만드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주보 문안이나 행사 안내문, 회의자료 같은 반복적인 행정업무에도 활용할 수 있다.
목회자가 행정에 사용하는 시간을 줄이고 성도들을 직접 만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면 AI는 분명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AI가 만들어낸 결과가 항상 사실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책이나 논문을 실제 자료처럼 제시하거나 성경과 신학적 내용을 부정확하게 설명하는 이른바 ‘환각’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목회자가 검증하지 않고 이를 설교나 교육에 사용한다면 단순한 기술 오류가 신학적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AI가 썼다”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AI 시대 교회가 가장 먼저 확립해야 할 원칙은 책임의 주체다.
AI가 설교 초안을 작성했더라도 강단에서 그것을 선포한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다.
AI가 만든 성경공부 자료를 교회가 사용했다면 그 내용에 대한 책임 역시 AI가 아니라 교회에 있다.
따라서 AI 활용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목회자의 신학적 판단과 검증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
저작권과 표절 문제도 있다.
다른 사람의 설교나 글이 AI 결과물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됐는지 이용자가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AI가 작성한 설교문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묵상과 고백처럼 전달하는 것이 목회윤리에 합당한지도 한국교회가 논의해야 한다.
목회상담 내용 입력은 더욱 조심해야
또 하나 간과하기 쉬운 문제가 개인정보다.
성도의 가정문제와 질병, 부부갈등, 경제적 어려움 같은 목회상담 내용을 일반 생성형 AI에 그대로 입력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목회자는 단순한 AI 사용자가 아니다.
성도들이 신뢰하고 맡긴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단 차원의 AI 가이드라인은 설교와 교육뿐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와 상담자료 처리 원칙까지 더욱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금지가 아니라 ‘분별’의 문제
AI를 무조건 금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지금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이미 일상적으로 AI를 사용하고 있다.
교회가 AI를 외면하면 기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만 논의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금지와 무조건적인 수용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분별이다.
어떤 업무에는 적극 활용할 수 있는지, 어떤 영역에서는 제한해야 하는지, AI가 만든 결과물을 어떻게 검증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원칙 하나는 분명하다.
AI는 목회를 지원할 수 있지만 목회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AI는 수천 개의 성경구절을 몇 초 만에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한 성도의 손을 잡아줄 수 없다.
장례예배 기도문을 작성할 수는 있어도 가족을 잃은 사람과 함께 울어줄 수 없다.
목회상담에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을 수는 있어도 한 성도의 삶을 수십 년 동안 기억하고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가 될 수는 없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한국교회가 물어야 할 질문은 “AI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만이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AI 시대에도 사람이 끝까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교단의 AI 가이드라인 채택은 그 질문에 대한 첫걸음이다.
AI 시대 한국교회의 경쟁력은 가장 좋은 AI를 사용하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사람과 영혼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AI 시대 교회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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