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체의 부피를 줄자로 측정할 수 있을까?
차원 혼동의 오류다. 기체는 기체의 차원에서, 고체는 고체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창조과학회 김명현 박사 인용) 우린 누구나 이런 일 앞에서 실소를 금치 못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자기 앞에서 일어날 때, 적절한 분별력은 생겨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경주 여행 기념으로 사 와서 기념품 장식장에 보관한 다보탑과 동자상이 우상을 상징한다며 밤에 몰래 내다 버린 아들의 행위는 옳은 일일까, 아니면 옳지 않은 일일까?
△성경책을 보물처럼 여겨 그 위를 뛰어넘지도 못하게 하고 머리에 베고 잠들면 불호령을 내리던 우리 할아버지들의 관습은 옳은 일일까, 아니면 무지몽매함에서 나온 그릇된 일일까?
△하나님께 드릴 것이라며 토요일마다 은행에 가서 빳빳한 만 원짜리를 바꿔와 주일 헌금을 준비하시던 할머니의 행동은 이성과 합리를 따지는 이 시대의 시선에 옳지 않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기체의 부피를 줄자로 재는 것처럼 하늘의 것, 하나님 나라의 것을 이 땅의 기준으로 측정하는 일이다. 옳고 그름은 이 세상의 방법이다. 그것으로는 하늘의 것을 다룰 수 없다. 하늘의 법칙은 옳고 그름이 아니다. 아름다움이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일어났고 행동하는 자들, 그들은 아름답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가 효력이 없되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오직 사랑으로 실천하기에 그들은 아름답다. 이런 건 옳고 그름으로는 판별이 불가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사랑으로 전진할 뿐이다. 그 때문에 결과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땅의 계산법인 옳고 그름은 철저히 결과론적이다. 결과가 좋으면 옳고, 결과나 나쁘면 틀리다. 다수가 만족하면 옳고 대중이 비난하면 틀린 것이 된다.
하나님은 다르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틀리다 말해도 그의 마음이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름답다고 하신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이 그렇다. 다수로부터 고액의 가치에 대한 비난이 일어났고, 대중으로부터 식사 예절의 무례함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칭찬하셨다. 하늘의 척도는 그의 중심이다. 심지어 결과나 나쁘고 자기에게 해가 됐어도 그 일은 아름답다. 그렇다면 우리네 교회들의 기준은 다시 세워져야 한다.
구역장 권사님의 닦달에 더 이상 욕먹기 싫어 주일 오후 헌신예배에 억지로 참석해 특송을 부른 김집사의 행동은 교회에선 옳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아름답지 않다.
예배 시간에 헌금 송으로 연주해서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한 일념으로 열심히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청년의 행위는 교회에선 옳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교회 안의 수많은 불편한 논쟁이 이 잘못된 세상의 측정법에서 나오고 있다. 기체는 기체의 차원에서, 고체는 고체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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