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맞이할 때 복음신문 독자 여러분에게 떠오르는 시상이 무엇일까? 필자가 어렸을 때 애송하던 시가 있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로 시작되어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내리고 또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로 매듭지어지는 <국화 옆에서>이다.
미당이 종교적으로 이념적으로 필자와는 다르지만, 필자의 삶이 슬픔과 고독과 가난 등의 벌판을 거닐고 계곡을 따라갈 때 애독하던 시가 되었다. 모친이 어제 막내를 출산 산고를 치르실 때 툇마루에 앉아서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필자는 참으로 기뻤다.
그러나 “엄마”는 진통이 지속 되어서 마침내 병원으로 옮겨지셨다. 다음 날이 되면 엄마가 건강하게 웃으시는 얼굴로 돌아오실 것으로 기대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이른 아침에 누님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아니라 오직 통곡만! 병원에서 수술을 하였지만 피가 모자라서 돌아가신 것이다!
필자의 1960년도의 4월이 되니 “봄부터 소쩍새 울음소리만!” 여름이 오니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고 있지 않는가!” 세월이 지나면서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젊음의 뒤안길”을 되돌아보니 어느 새 가을이 되어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기만 하는구나! 어머니를 잃고 66년을 지나다 보니 나의 세상살이는 소쩍새의 울음소리, 한 여름의 천둥소리, 회한의 세월, 가을의 무서리만 내리고, 잠도 오지 않으며, 추운 겨울이 오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 세상의 엄마가 없는 삶은 참으로 고달프기만 하다. “눈치꾸러기” 인생이 아니었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외로운 철로”가 아니다. 기차의 철로는 두 개가 있음을 체험하면서 66년을 달려왔다. 삶의 엄마는 없었지만,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게 오셨고 성령의 권능으로 “사랑의 두 철로”를 달리도록 도우시고 있으신다. 요한복음 15장 1절이 상기된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그리고 4절과 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가지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다! 그리고 16절과 21절에서 “내 이름으로” 곧 예수님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15장의 마지막 두 절 26~27절에서 예수님은 놀랍고 놀라운 약속을 하신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할렐루야!
엄마가 없어서 “엄마가 섬 마을에 굴 따러 가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뜸북 뜸북 뜸북새” 슬피 울면서 부르던 어린 시절이 기억이 가슴 속에 있지만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신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창조주 엘로힘 하나님(창 1:1),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서 운행하시는 엘로힘 성령님(창 1:2), 참으로 좋으신 구원의 주 야훼 엘로힘 하나님(창 2:4, 3:15)이 임마누엘 예수 하나님(마 1:21, 23)이심을 증거하게 하시니 참으로 놀라운 열매가 아닌가?
만왕의 왕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성정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니(행 3:6) 참으로 감사합니다!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성령님의 권능으로 예수님의 증인되기를 소원합니다!(막 16:17-20).
팔복의 인격(마 5:1-18)과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23)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이 하나님 나라 확장에 더욱 쓰임 받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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