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입구에서는 모든 것이 멀고 아득하지만, 출구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짧고 아쉽다.” 쇼펜하우어는 젊은 날에는 삶이 끝없는 미래로 펼쳐지지만, 노년에는 지나온 시간이 짧게 보인다고 성찰했다. 한 해도 그렇다. 새 달력을 펼칠 때에는 12 달이 넉넉해 보였으나, 어느새 2 달 밖에 남지 않았다.
2026년의 남은 달력을 바라보며 우리는 묻게 된다. “올해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그리고 조금 더 깊은 질문 앞에 선다. “그 시간을 살아낸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익어 가고 있는가?”
타마르, 한 그루가 내어 주는 풍요 : 시편 92편은 의인의 삶을 종려나무에 비유한다. 여기서 종려나무는 히브리어로 ‘타마르’, 곧 대추야자나무다.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여성의 이름 ‘다말’도 이 나무의 이름과 같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 다윗의 딸 다말, 압살롬의 딸 다말이 그 이름을 지녔다(창 38장; 삼하 13장; 14:27). 타마르는 성경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름 속에 함께 살아 있는 나무다.
그 결실은 구체적이고 풍성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 자료에 따르면 잘 관리된 대추야자 한 그루는 평균적으로 해마다 약 60~70Kg의 열매를 생산한다. 품종과 재배 조건에 따라 수확량은 달라지지만, 한 그루가 수십 킬로그램의 먹을거리를 내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풍요를 짐작할 수 있다. 타마르는 풍요와 다산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의인이 이 나무처럼 번성한다는 말씀에는, 한 사람의 생명이 주변을 먹이고 살리는 결실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이 대목에서 연말의 질문이 달라진다. “나는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에서 “나의 수고로 누구의 삶이 풍성해졌는가?”로 나아간다. 내가 가르친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찾았는가. 함께 일한 사람이 책임을 감당할 용기를 얻었는가. 나와 대화한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했는가. 코칭 리더의 결실은 이렇게 사람의 성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내 안에서 익은 것이 다음 세대에게로 :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다음 세대를 돌보고 성장시키려는 관심을 ‘생성성’(generativity)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다른 사람의 미래에 기여하는 성숙이다. 이 관점에서 인생 후반기는 오랜 경험을 나눔의 지혜로 바꾸는 중요한 시간이 된다.
경험은 성찰을 통해 나눌 수 있는 지혜가 된다. 과거의 성공을 돌아보며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였는지 살피고, 실패를 되짚으며 자신이 놓쳤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는 후배에게 자신의 방식을 전하는 일과 함께, 후배가 자기 길을 발견하도록 도울 여유를 얻는다. “내 경험 가운데 지금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은 무엇인가?” “그가 스스로 판단하고 시도하도록 어떤 기회를 내어 줄 것인가?” 이 질문에 응답할 때 오랜 경력은 다음 세대의 자원이 된다.
시편은 하나님께 심긴 사람이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풍성하고 청청하다고 노래한다(시 92:13~14). 이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께 뿌리내린 관계에 있다. 그래서 결실을 살피는 시간에는 뿌리를 돌보는 성찰도 필요하다.
한 해의 열매를 누군가의 내일에 심다 : 연말의 코칭 대화는 세 가지 질문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올해 당신 안에서 가장 귀하게 익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 열매가 지금 필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남은 두 달 동안 그 사람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첫 질문은 경험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고, 둘째 질문은 시선을 이웃에게로 열며, 셋째 질문은 성찰을 구체적인 약속으로 이어 준다.
한 해 동안 함께 일한 사람들이 배운 것을 나누고, 서로의 성장을 구체적으로 인정하며, 다음 해에 맡아 보고 싶은 책임을 이야기하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지도자는 누가 무엇을 더 감당할 수 있는지 듣고, 필요한 지원과 권한을 함께 정할 수 있다. 한 해의 결산이 다음 세대의 출발점이 되는 순간이다.
2026년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거둘 가장 귀한 열매는 우리 곁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다. 그들이 다시 다른 사람을 살릴 때, 우리의 한 해는 다음 세대의 시간 속에서 계속된다. 올해 내 삶에서 익은 것을 누구의 내일에 심을 것인가. 코칭 리더의 연말은 그 질문에 응답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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