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사상과 주의
제1절 사상의 의의
<사상>하면 무슨 불온한 사상이나 적화사상을 연상하는 경향이 많다. 사상이란 공산주의자들의 전용어는 아니련만 그마만큼 자유진영에서는 사상이란 용어에서부터 뒤떨어진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반면에 공산진영에서는 어느듯 적화사상의 독소를 악착스렇게 민주진영에까지 각층 각계로 침투공작을 하고 있다. 더우기 사상계에서 가장 선두봉이 되어야 할 우리 기독교계에서 까지라도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할 사상과 주의의 선포를 한갖 위험한 정치 운동으로 간주하고 비난만 하려고 대드는 태도는 크나큰 과오라기보다도 지도자들의 중대한 실책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문제다.
피조물 전체가 하나님의 사상 표현인데 그중에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사상 실현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 생활이 하나님의 사상을 실현할 때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주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기도를 매일 올리는 우리들의 기도가 성취된 지상낙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 가장 힘쓰고 애써야 할 본분은, 온 인류가 지녀야할 바이겠지만, 특히 우리 기독교인으로서는 하나님의 사상 표현이신 말씀을 받아, 모든 인민에게 사상을 정돈하여 생활화시킬 수 있도록, 체계화된 사상과 주의를 선포해 주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기독교인은 사상과는 인연이 먼 것으로 알고, 그저 '죽어 천당'만 찾고 있으니 '살아 천당'을 못찾는 자가 죽어 천당을 찾을수 있겠는가? 이런 모순이 도대체 어디 있으랴? 과거가 현실을 이루었다면, 현실은 미래의 준비기간이 아닐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현실의 심중천국 (心中天國)을 이루지 못하고서야 어찌 장차 소유할 영원천국(永遠天國)을 그릴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먼저 그 사상이 바로 서야 된다. 신앙절개를 팔아 먹는 것은 곧 사상부패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주께서 심지(心志=思想)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고, 신(信)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하신다" (사 26: 2~3)고 하였다. 우리가 밟아온 모든 경험을 정돈해 놓은것-정돈된 생각-생각사(思), 생각상(想) 글자 그대로 생각 위의 생각이요, 생각 속의 생각이 사상이다. 구태어 이를 정의 하자면 《사상》이라면 <앎>과 <경험>에 의하여 <정돈된 생각>으로 <뜻을 세운 것>을 말하는 것이고 《주의》라면 <사상을 실현시키는 한 경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렇게 해야 옳다고 믿는 <신념>과, 그대로 되기를 바라는 목적을 향해 나가는 <길>이 된다.
이렇게 볼때 세상의 정치, 경제, 교육은 결국 조물주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뜻을 이 세상 위에 이뤄지게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 기독교인에게 아무러한 추려낸 사상도 없다면 과연 무엇으로써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된다고 하랴?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체계를 세워 세상에 두루 소개하여 하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뤄지는데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세의 사상 조류와, 주의 계통을 대별하여 본다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군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상대적인 둘씩 둘인 네 가지 뚜렷한 주의를 들 수가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경제를 기초로 하고 있는 고로, 국가도 인민도 경제에만 사상이 집중되고, 또 <군주주의>와 <민주주의>는 정치를 기초로 하고 있는 고로 국가와 인민도 정치에만 사상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도 각 주의는 일면적이요, 일부분적인 까닭에 도저히 원만한 기대를 할 수 조차도 없을 뿐더러, 결국에는 불평 사회를 이루고 화평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독재, 군주, 제국, 자본, 공산 등등의 각 주의자나 국가는 그래도 모두가 다 인민을 위하는 민주주의라고 자칭하며, 인민의 사상을 여지 없이 혼란시키고 있으니, 무지대중이 참과 거짓을 분간치 못하고 풍조에 밀려 그 사상지조가 요동케 됨도 무리가 아니다.
세상에서는 <민주주의>는 아주 <공산주의>와 그야말로 빙탄불용(氷炭不容)의 사이가 되고, 따라서 그 내용도 피차간에 천양지차인 줄로 알고 있으나, 사실인즉 <민주주의>에서도 공산주의에서 쓰는 통제 또는 계획 경제정책을 쓰는 예가 간혹 있으나, 거의 자본주의 경제정책을 쓰고 있다. 동시에 <공산주의>에서도 명목상의 민주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인 즉 전제정치을 쓰고 있다. 오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경제를 토대로 한 물질 근본은 같으되, 사상과 정책이 다르니까 자아유익을 위한 세력 분포의 대결에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국민을 돈으로 흡수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돈 있는 사람이 대개 권세를 잡게 된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은 돈의 권세를 막을 도리가 없는 데서 안심 불안과 생활에 차이가 격심해지게 되니까 사상과 생활에 안정을 잃게 된다. 이렇게 인심과 생활에 동요를 받는 기회를 이용해서 <공산주의>사상은 가차없이 침투해 오기 마련이다. 소수의 사람이 자본을 독점하면 그 반비례로 <공산주의> 사상은 더 커져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의 모체요, 그 사상을 키우는 온상이 되고 만다.
「야고보」는 벌써 이렇게 될 것을 예언해 놓았다. "부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약 5:1~3)라고 말세에 재물을 쌓는 부자들을 향하여 경고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좌(左)로나 우(右)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수 1:7)고 하였고, 「야고보」는 "주님 강림하실 때까지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하였다(약 4:8).
사상중심이 바로 서지 못한 민중으로서는 자본가가 득세하면 자본주의를 추종할 것이고, 공산세력이 강해지면 또 그 주의를 추종할 것이다. 즉 자기 중심이니 자기에게만 이로우면 그만일것이고 무슨 사상절개가 있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 중심 사상이 아니고는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 중에서도 사상이 정돈되지 못한 사람은 <자본주의>는 우리의 편인줄만 알고 <공산주의>만이 우리의 원수로 아는 사람이 있으나 이 두 가지 주의가 다 같이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경제중심주의 즉 썩을 물질 본위의 사상을 토대로 했으니 만큼 저들은 언제든지 먹는 것 즉 배를 위하여 싸우고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두가지 주의가 다 경제를 기초로 하였기 때문에 그 근본은 꼭 같이 팥죽 한 그릇을 위해 사는 <「에서」주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중에서도 <공산주의>는 무신론주의니 생각에 넣을 필요조차도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사상과 이 주의는 칼로서는 못막아낼 것인고로, 이보다 더 좋은 주의를 가져다 놓지 않고서는 막아낼 도리가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우기 오늘날 <자본주의>국가에서는 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 있느니만큼 필경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에게 어서 들어와 뿌리를 박아달라고 기회와 환경을 주고, 불러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고로 공산주의자들이 생긴 다음에 잡으려는 헛수고보다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할 일이라 하겠다.
보이는 총칼로 보이지 않는 사상을 막을 수 없는 것이고, 물질과 지식으로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두움을 어두움으로는 막을 수 없다. 빛이 비추면 어두움은 자연히 물러갈 것 뿐이다.
남의 사상을 운위하기 보다 자기 속에 있는 물질중심의 암흑 사상을, 진리중심의 빛의 사상으로 물리쳐야 한다. 이것이 생명 있는 참사상을 지닌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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