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1년 4계절 가운데 가장 멋진 계절이다. 봄, 여름의 풍광도 아름답지만 깊어가는 가을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가을의 풍광은 아름답다.
가을의 하늘과 땅은 씨 뿌려 가꾼 농부의 수고에 창조주 하나님의 은총이 더해져 열매가 넘실거리고, 낮고 높은 산들이 단풍으로 물들어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하늘은 높고 맑은데, 태풍도 비껴간 들판의 화려한 아름다움은 기름지고 풍성함으로 연결된다.
언제부터인가 이맘때가 되면 버릇처럼 되새기는 전북 고창 출신의 서정주 시인의 시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가을날에 가만히 읊조리는 소리’라는 뜻을 지닌 ‘추일미음’이다.
‘울타리 밑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 맨드라미 촉규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 안해박은 뜰 안에 큰 주먹처럼 놓이고 / 타래박은 뜰 밖에 작은 주먹처럼 놓였다만 / 내 주먹은 어디다가 놓았으면 좋을꼬’
1958년 9월에 발표된 글에 이어서 촉규(접시꽃), 안해박, 타래박과 같은 단어는 생소하게 들릴만큼 옛스럽지만, 서정성과 통찰력이 풍부한 미당(서정주 시인의 호)은 형형색색으로 물들고 여물어 가는 가을날의 한복판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내 주먹은 어디에다 두면 좋을꼬’ 의 시구는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고뇌에 찬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독자들을 깊은 성찰의 세계로 안내한다.
가을이 깊어질 때마다 내가 이 시를 반추하는 것은 그런 내용 때문일 것이다. 이 시구는 언제나 큰 울림을 주며 나를 돌아보게 하며 깊은 성찰의 자리로 이끈다. AI가 주도하는 4차 혁명 시대의 급격하게 변화는 환경으로 인해 자아 상실 시대란 말이 나올 만큼 정체성의 혼돈과 희미 해진 세상에 살면서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고, 내 주먹은 어디에다 두면 좋을까?’와 같은 시구는 독자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라는 강한 메세지를 시사한다.
박이 여물고 물드는 계절을 수십 번째 맞고 있는데, 과연 나는 어떤 물이 들었을까? 내가 서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올 가을에는 또 어떤 색깔로 물들어가고,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삶의 위치는 어디일까? 이토록 향기 나는 아름다운 계절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체성을 바르게 하고, 그리스도의 온유, 겸손, 섬김, 그리고 사랑으로 물드는 삶이라면 참 좋겠다.
단풍 좋은 산과 계곡은 찾는 사람들로 줄을 잇고 있는데, 매년 가리라 하면서도 찾지 못했던 지리산 붉은 애기 단풍을 금년에는 가 보리라 생각하며 달력을 열어 스케줄을 본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 주 찬양 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찬송가 478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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